힘들 때 의지할 사람이 없거나 집 또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 19~39세를 ‘고립·은둔 청년’이라 부른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들을 정부는 아주 최근에야 인식하게 됐다.
54만명. 정부가 지난해 처음 실태 조사로 추정한 국내 은둔·고립 청년의 규모다. 경남 김해시 인구수와 비슷하고, 경기 김포시 인구보다 많다. 이것이 자살과 중독에 이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처음으로 인천·울산·충북·전북에 전담 기관인 ‘청년미래센터’를 열었다.
그런데 고립·은둔 청년들을 일찍부터 돌봐온 사람이 있다. 김옥란(53)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장은 20년간 자립 준비 청년들과 고립·은둔 청년들을 위한 그룹홈을 이끈 공로로 최근 ‘2024 삼성행복대상 가족화목상’을 받았다. 간판도 없는 센터를 찾아가다 한참 길을 헤맸다. 김 센터장은 “우리만의 아지트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판을 달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무실 천장에는 어느 청년이 만들었다는 푸른 고래 인형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똑똑똑, 너 거기 있니?
-고립·은둔 청년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자발적으로 조사에 응한 사람의 수만 헤아린 것이니 실제 고통을 겪는 청년들은 더 많을 거예요. 외부와 접촉을 꺼리니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워요.”
-고립·은둔 청년이라는 단어도 낯선데.
“직장 생활 같은 외부 활동을 하지만 인간 관계 교류가 전혀 없는 활동형 외톨이도 포함됩니다. 그들이 실직,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집 안에 스스로를 격리하면 은둔 청년이 되지요.”
-청년들이 왜 그럴까요?
“10대 시절부터 부모와의 갈등, 학교에서의 따돌림 같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 오는 청년 10명 중 7명이 부모와 사이가 나빠요. 청소년기에 받은 상처를 품고 있다가 대학 진학이나 취업 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아예 숨어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지난해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들이 고립·은둔 상태에 빠진 원인은 대인 관계(27%), 가족 관계(18.4%), 폭력·괴롭힘(15.4%), 학업(13.0%), 취업(9.1%) 순으로 나타났다. 20대 청년들은 취업(24.1%)과 대인 관계(23.5%) 문제가 주 원인이었다.
-자발적으로 대인 관계를 끊은 청년들을 국가가 도와줘야 하나요?
“청년의 문제는 가정 전체의 고립·은둔, 나아가 해체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과 자녀 이야기를 주로 하는 부모 세대가 자녀 문제가 부끄러워 고립되기 시작하고, 또 다른 자녀가 방치되면서 가정 전체가 고립되고 부서지는 경우가 많아요. 한 청년의 고립·은둔이 가족 공동체 해체로 번지는 발화점이 될 수 있습니다.”
고립·은둔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비율도 증가한다. 10년 이상 이런 생활을 한 청년의 89.5%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고, 41.9%는 실제 시도한 경험이 있다.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는 작년부터 고립·은둔 청년을 둔 부모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80여 명의 부모가 자녀 문제로 이곳을 찾았다. “우리 사회는 ‘부모가 먹여주고 재워주니까 은둔 생활을 한다’는 공격적 시각을 갖고 있어요. 부모도 이해 못하기는 마찬가지죠. 10대 때부터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청년들이 하는 최후의 선택이 은둔이에요.”
◇함께 살자, 서로 도우며
김 센터장도 고립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새아버지는 매일 밤 술을 먹고 들어와 가족을 때렸다. 중학생 때부터 자정까지 거리를 배회하는 일이 잦았다. 가족을 대면하지도 않고, 속을 털어놓지도 않는 고립의 시간이 이어졌다. 계부는 그가 스물한 살 때 돌아가셨다. “내 사춘기를 망쳐놓고,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다니. 원망과 미움에 엄마와 동생도 싫어져 집을 나왔어요.”
스물다섯 살에 지금 남편을 만나 사무실 겸 살림집이 딸린 신문 보급소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형편이 어려워지자 남편은 길거리를 배회하며 일거리를 찾았고, 김 센터장은 두 살 난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취업하면서 인천 부평의 공중화장실을 공유하는 빈민촌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곳에서 홀로 방치된 열네 살 순길이를 만났다.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으로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어린 시절이 떠올라 밥상에 숟가락을 하나 더 놓기 시작했다. 그러던 2000년, 신문 보급소를 맡아 운영하면 보증금 3000만원을 준다는 말에 서울로 이사를 결심했다. 그때 순길이가 말했다. “저 여기 있으면 사람 안 돼요. 데려가줘요.” 그렇게 서울 신촌의 신문 보급소에서 살기 시작했다. 김 센터장 부부와 두 딸, 인천에서 온 순길이와 신문 배달 청년까지 모두 7명이 함께 살았다.
-그룹홈이 그때 만들어진 거네요.
“다들 넉넉지 않으니 서로 의지하며 일해보자는 거였죠. 다니던 교회의 자산가가 ‘보증금 3000만원을 만들어줄 테니 다른 일을 찾아보라’며 지원을 해줬어요. 당시 운영하던 보급소가 적자였거든요. 남편은 어린이집 차량 운전기사, 순길이는 카센터 정비사로 취직했어요. 나머지 청년들은 결혼, 임대주택 당첨 등을 계기로 자립해 나갔고요.”
김 센터장은 두 딸의 교육비를 대기 위해 무역 회사에 취업했다. 생활이 안정되자 남편은 노숙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바하밥집’을 차렸다. 노숙하던 시절 배고팠던 기억 때문이었다. 밥을 공짜로 준다는 말에 갈 곳 없는 청년들이 몰려왔다. 2014년, 월세는 직접 벌어내는 조건으로 청년들에게 셋방 보증금을 지원해줬다. “과거에 저희가 지원받은 보증금을 갚을 기회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렇게 모여 사는 청년들이 늘어나자 흩어져 있던 그룹홈을 모아 2017년 ‘바나바하우스’를 만들었다. 이듬해 남편의 건강이 나빠져 회사를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으로 미국 시애틀의 청년 회복 기관을 탐방한 뒤 남편은 무료 급식소, 김 센터장은 그룹홈을 맡기로 했다. 제대로 해보고 싶어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2019년, 지금의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가 탄생했다.
-구태여 이들과 같이 산 이유라면.
“10명 중 7명은 부모와 갈등을 겪고 있었고, 폭력·학대에 노출된 기억 때문에 불안감도 높아요. 부모처럼, 이모·삼촌처럼 며칠에 한 번씩 모여 이야기만 나눠도 이 청년들의 삶이 바뀌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지금까지 60여 명이 공동 생활을 통해 회복하고 자립했다. 현재는 청년 8명이 함께 살고 있다. 센터에 나와 점심 식사와 자조 모임 등에 참여하며 공동 생활을 경험하는 청년도 30여 명에 이른다.
-청년들이 함께 사는 게 도움이 되나요?
“여기 온 친구들은 갈등을 겪어도 괜찮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조용히 해주세요’ 같은 말도 하지 못하고 참다가 폭발하죠. 여기서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해요. 호칭은 ‘~님’으로 통일하지만요. 함께 살면서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 법, 해결하고 나면 괜찮아질 수 있다는 점 등을 배웁니다.”
그곳을 찾은 날, 센터는 고요했다. 모두 야구를 하러 갔다고 했다. 금요일마다 진행되는 ‘리커버리 야구단’ 활동이다. 매년 한 번씩 제주도에 전지훈련도 간다.
-왜 하필 야구인가요?
“야구를 하기 위해 마약도, 술도 끊은 청년들을 미국에서 봤어요. 그 전까진 청년들의 ‘직업 자활’에 초점을 맞췄는데,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게 먼저라는 점을 깨달았지요. 딱딱한 야구공을 던지고 받으면서 무력감, 우울감, 두려움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상대방의 감정도 잘 받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우리, 바다 위로 가자
이들을 방에 가둔 것은 부모나 친구, 이웃 같은 주변인들이었다.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고립·은둔 청년들이 성인기 이전에 ‘학교나 동네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괴롭힘이나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57.2%), ‘부모가 심하게 때리거나 꾸짖고 모욕했던 경험’(51.2%)이 있었다. 광주광역시가 2020년 발표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에서도 조사 대상의 70.9%가 왕따·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었고, 48.1%가 부모에게 학대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대하는 부모와 따돌리는 친구들이 사라지면 해결되나요?
“청년들의 부모 세대 역시 피해자일 수 있어요. 경제 위기로 사회가 흔들렸고, 부모들도 생존과 노후 등으로 불안했죠. 그런 감정 때문에 자녀를 통제하고 싶어 하는 측면이 더 컸다고 봐요. 저 역시 아이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했던 적이 있어요. 부모 세대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따돌림이나 박탈감을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꿔나가야 합니다.”
그의 큰딸 역시 고립을 겪었다. 수많은 청년의 마음을 다독인 엄마도 딸의 마음은 알지 못했다. 갑자기 고교 진학을 하지 않겠다는 딸에게 “가만히 있으면 졸업장이 나올 텐데”라고 말해버렸다. 딸은 그룹홈의 이모·삼촌들 앞에서야 “중학생 때 왕따를 당했다”고 고백했다. 학교를 그만둔 딸은 방에 스스로를 격리했고 거식증까지 겪었다. 남편이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하라고 끌어내 청년들 밥을 먹이면서 딸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 부부가 만든 그룹홈이 뜻밖에 딸을 구원한 셈이다.
-그룹홈도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될까요?
“우리 남편은 ‘가족은 똥이 같다’고 해요. 같은 음식 먹고 같은 변(便)을 보는 게 가족이라는 뜻이죠. 저는 서로를 회복시키는, 피가 아니라 회복의 끈으로 연결된 게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그룹홈도 가족 맞지요.”
포유류인 고래는 수면으로 올라와 호흡한다. 몸이 아프거나 상처 입어 어두운 바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고래가 있으면 동료 고래들이 수면 위로 밀어 올려준다. 센터 천장에 매달린 푸른 고래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김 센터장과 가족들이 세상 밖으로 구출한 청년들처럼 보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