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와 시외버스를 통틀어 가장 먼 길과 오랜 시간을 달려야 하는 노선은 어디일까요. 물론 이러한 순위와 수치를 정확하게 셈한 자료는 딱히 없습니다. 다만 전국의 버스 터미널을 오가며 제가 해둔 메모만은 빼곡합니다. 버스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공연히 근처를 배회하는 일보다는 터미널 벽면의 시간표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게 한결 재미있는 까닭입니다.
먼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는 부산이 가장 멉니다. 부산의 사상터미널까지는 약 500㎞. 경남 진해나 거제, 남해나 삼천포 혹은 전남 구례보다도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합니다. 소요 시간은 4시간 40분 정도. 경남 창녕에 한 번 정차하는 까닭에 서울 경부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직행 버스보다 20분 정도 더 걸립니다. 2시간 17분 만에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KTX청룡도 있다지만 여전히 이 노선은 인기가 많아 좌석마다 승객으로 빼곡합니다.
반면 부산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곳은 서울이 아닙니다. 부산 동부터미널에서 강원도 고성의 거진터미널까지 약 6시간 40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이 버스는 동해안의 해안선을 따라 약 435㎞를 달립니다. 부산에서는 5시간 동안 남해안을 달려 전남 진도까지 이어지는 버스 노선도 있습니다. 5시간이면 전남 진도에서 서울도 갈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강원도까지 동북 방향의 대각선을 그리는 노선은 없어 진도에서 가장 먼 곳은 5시간 30분 정도가 걸리는 인천입니다.
인천종합터미널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멀고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버스 노선이 있습니다. 경상북도 울진행. 이 버스는 하루에 한 대만 운행합니다. 공지된 예상 소요 시간은 8시간 35분. 인천에서 출발한 버스는 경기도 안산과 수원과 오산 같은 수도권 도시를 찍은 다음 경북 경주까지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그러고는 다시 북으로 방향을 틀어 포항부터 동해의 푸른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7번 국도를 따라 강구와 영덕과 영해와 후포와 평해를 거쳐 울진터미널에 도착합니다. 물론 하루 한 번 울진에서 인천으로 가는 반대 노선도 있습니다.
오는 12월 31일이면 경북 영덕에서 강원 삼척을 잇는 철로가 새로 열립니다. 기존 노선과 연결되어 부산에서 강릉까지 과거의 절반 수준인 네 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교통이 불편했던 남부 영동과 북동부 영남 지역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새로 생기는 속도는 더디고 사라지는 속도는 지나치게 빠르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숱한 버스 노선 운행이 축소되거나 중단됐습니다. 이용객이 급감했다, 수익성이 없다, 물론 이러한 연유를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터미널에 도착해서야 평소 이용하던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입니다. 대부분 스마트폰 예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지 않는 고령층입니다. 상주 직원도 없이 매표기만 있는 터미널에서 어르신들이 짓는 허망한 표정을 저는 자주 봐 왔습니다. 며칠 전 울진에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에는 버스를 탔고 오는 길에는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이용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 오가는 길 위에는 숱한 사람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