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확장하고 있는 연애 프로그램의 세계. 왼쪽부터 50대 이상 출연자를 대상으로 한 ‘끝사랑’, 기독교인 한정 맞선 프로그램 ‘홀리한 내짝’, 점술가들을 모은 ‘신들린 연애’. 바야흐로 ‘연프 전성시대’다. /JTBC·CBS·SBS

주부 이현정(45)씨는 ‘연프(연애 프로그램) 마니아’다. 매주 목요일 밤이면 ‘나솔사계냐, 돌싱글즈냐’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나는솔로(나솔·SBS플러스, ENA)’의 번외 편인 ‘나는 솔로,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나솔사계·ENA, SBS플러스)’와 ‘돌싱글즈(MBN)’ 본방 시간이 겹쳐 어느 쪽을 택할지 고민이라는 것이다.

나솔은 연프의 원조 격인 일반적인 랜덤 맞선 리얼리티, 돌싱글즈는 말 그대로 ‘돌싱’이 주인공이다. “그나마 (목요일에 방영된) ‘끝사랑(JTBC)’이 끝나서 선택지가 줄어 다행이에요. 전 연애 프로그램은 빼놓지 않고 모두 챙겨 봐요. 저의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대리 연애하는 느낌이랄까요.”

10대 기업 임원인 김모씨도 최근 끝난 50대 연애프로그램 ‘끝사랑’에 빠져 산다. 김씨는 “내 또래의 신사 숙녀들이 마지막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에 감정이입하게 된다”며 “남성 갱년기인가 싶기도 한데, 주변에 나솔을 챙겨본다는 남자도 꽤 많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연프 전성시대다. 얼마 전 지드래곤도 군대에서 연프에 중독됐다고 고백한 바 있다. “군대에서 처음 봤어요. 애들이 다같이 그걸 얼마나 이야기하던지. 감정이입이 안 되겠어요? (다음 편 기다리는) 3주가 3년 같아요.” 우주 대스타도 빠지는 연프의 매력은 뭘까.

연프 중독자들의 말대로, 많은 사람이 연프를 보면서 대리 만족을 한다. 나한테 일어나지 않는 일,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을 대신 즐긴다는 것. 회사원 김모(41)씨는 매주 남편과 ‘나솔’을 본방 사수한다. 부부의 루틴이라고. 김씨는 다른 차원의 만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온갖 인간 군상의 밑바닥 감정 싸움, 이해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을 탐구하다 보면 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가정을 꾸렸다는 우월감, 안도감 같은 걸 느껴요. 정작 싱글들은 너무 찌질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못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LG 계열 회사에 다니는 박모(45)씨도 반드시 아내와 시간을 맞춰 연프를 본다. 박씨는 “아내와 ‘너라면 저런 상황에 어떻게 하겠냐’ ‘어느 쪽을 고르겠냐’는 얘기를 하는 시간이 즐겁다”며 “부부 관계에 있어서도 계속 서로를 알아나가는 시간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미혼인 박민정(34·교사)씨는 “주변에 제한된 직업의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데 연프를 보면서 사회성을 키우는 것 같기도 하다”며 “나는 썸탈 때, 연애할 때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교훈을 얻기도 한다”고 했다. 연프가 요즘 ‘문화인류학 교과서’가 됐다는 평이 나올 정도.

세대별로 수렴하는 연프가 다른 경향도 보인다. ‘환승연애(티빙)’나 ‘하트시그널(채널A)’ 같은 아리따운 2030이 주인공인 프로그램(지디를 연프 중독의 길로 이끈)은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게 4050들의 얘기. 너무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돌싱글즈’나 ‘끝사랑’은 이런 중장년층이 타깃이다. 연모와 친애의 감정에 목마른 건 나이와 무관하다는 얘기다.

연프의 세계는 끝도 없이 확장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포맷과 콘셉트를 바꿔 여러 형태의 연프가 나오고 있는데, 최근 기독교방송인 CBS는 ‘홀리한 내짝’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국내 최초 크리스천 연애 리얼리티. 종교인들이 상대를 찾을 때 필수 조건으로 종교를 고려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이 가는 기획이다.

반대 급부랄까. 지난여름에는 점술가들을 모은 연애 프로그램 ‘신들린 연애(SBS)’가 방영됐다. 사주든 신점이든 타로든, 점술가를 붙들고 연애운을 물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남의 연애운만 점쳐주던 점술가들이 자기 앞가림은 잘하는지, 좀 궁금하기도 하다.

놀라지 마시라. 퀴어 연애 프로그램도 있다! 모든 출연자가 남자로 구성된 ‘남의연애(웨이브)’. 대부분 아이돌 뺨치는 훈훈한 외모를 자랑한다(그래서 원통해하며 챙겨 보는 여성 애청자가 많았다고). 남남(男男) 커플이 ‘촉’하고 버드키스 정도 나누는 장면은 구태여 가리지도 않았다. 부정적인 여론이 비등하지만, 남의연애는 벌써 시즌3까지 방영됐다. 레즈비언들이 출연하는 ‘너의연애’도 기획 중이라고 한다.

남의연애 출연자 일부는 실제 연인이 돼 유튜브에 커플 브이로그를 올리고 있다. 구독자 31만. 연프 출연자들이 이처럼 방송의 인기에 힘입어 인플루언서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연예계 데뷔나 개인 사업을 띄우려는 사심으로 연애 예능을 이용한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연프 홍수 속에 계속 더 센 도파민을 좇다 보니 ‘빌런(악당)’, 극단적인 캐릭터들이 활용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민재판’이 열리는 경우도 있다. 보통 사람의 개인사가 이렇게까지 까발려지고 난도질당해도 괜찮은가 싶기도 하다. 연예 예능의 조상 격인 ‘짝’은 일반인 출연자의 사고로 종영됐다는 걸 기억할 필요도 있다.

다음 연프는 뭘까. 시니어? 연상연하? 초딩? 참고로 10대의 연애를 다루는 프로그램은 이미 있었다(티빙의 ‘소년 소녀 연애하다’, 넷플릭스 ‘열아홉 스물’ 등).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