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역 1번 출구 앞, 줄 서서 사 먹는 붕어빵. 배우 정해인을 닮은 노점 주인장이 소셜미디어에서 큰 화제를 모은 덕이었다. 프리랜서 모델로 활동하는 청년 김종오씨. “1000~2000원짜리 겨울 간식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직접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공지가 올라왔다. 단속으로 장사를 잠시 접는다는 내용이었다. “관심을 받게 되면서 안타깝게도 신고가 너무 많이 들어와 구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부터 기존 자리에서 장사를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뼈마디 시린 골목 어귀, 노란 전구 불 반짝이며 한파의 작은 피난처가 돼주곤 하던 겨울의 등대. 추억은 식어가고 있다. 천안의 한 붕어빵 장수(78)가 법원에 넘겨졌다. 허가 없이 조립식 구조물을 노상에 설치해 어묵 등을 함께 팔았다고 한다. 식품위생법 위반, 동종의 벌금 전력이 한 차례 있었다. 벌금 150만원이 선고됐다. 형량이 너무 무겁다는 항소에 재판부는 “생계형 범죄로 보이는 점을 고려했다”며 최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이 남성은 상이군경, 국가유공자였다.

◇미안하지만 신고할게요

광주광역시의 한 붕어빵 노점에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사과문이 붙어있다. 주인장의 중학생 딸이 써준 글씨라고 한다. /연합뉴스

붕어빵이 거리에서 밀려나고 있다. 찾기 힘들어지자 ‘붕어빵 가게 위치 공유’가 정례적인 동절기 이벤트로 자리 잡았을 정도다. 이달 초 중고 거래 앱 당근이 ‘붕어빵 지도’ 서비스를 출시했다. 붕어빵 검색량이 전달 대비 135배 폭증했다. 뜨거운 인기, 그러나 쫓기는 신세. “찬 바람 불고 밤이 짧아져 매출이 줄어드나 했는데, 저희 디저트 가게 앞 불과 20m 거리에서 붕어빵을 팔기 시작하네요. 사유지라 강제 철거 사항이 아니고 시청 위생과에서 벌금만 부여한다고 하네요… 강제로 못 하게 하는 방법 없을까요? 매출 20~30%가 빠집니다.” 전국 자영업자 온라인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지난달 올라온 이 같은 하소연, 기온이 내려가면서 더 늘고 있다.

다들 형편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자체 최초로 2년 전 노점 단속에 특별 사법 경찰 제도를 도입한 서울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주로 인근 자영업자의 신고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붕어빵 장사가 주로 일반 보도에서 이뤄지다 보니 앞 건물에서 임차료 내고 장사하는 분들에게는 그저 불법 영업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식으로 장사하려면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도로 점용 허가를 받아야 하고, 공시지가 등을 기준으로 도로 점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대다수가 이를 어기고 세금도 내지 않는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반(反) 신고파’도 적지 않다. 직장인 한모(37)씨는 “생계가 달린 일이다 보니 이해는 가지만 너무 세태가 각박해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달 광주광역시 월산동의 한 붕어빵 노점 천막에 커다란 사과문이 나붙었다. “죄송합니다. 통행에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 부탁 드립니다. 많이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50대 주인장은 “중학교 다니는 딸이 직접 써서 붙여줬다”고 했다. 광주 5개 자치구는 올해만 540여 건의 붕어빵 노점 단속을 벌였다. 민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보다 60% 정도 증가한 수치다.

◇한 마리 1000원… ‘金붕어’ 되다

경기도 분당의 한 붕어빵 노점. 3마리에 2000원이다. 슈크림 앙금은 1마리에 1000원이었다. /정상혁 기자

지난 주말 서울 종로 및 경기도 분당 일대를 둘러본 바, 붕어빵 시세는 3마리에 2000원이 ‘국룰’로 자리 잡은 양상이었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게 물가라지만, 붕어빵은 이제 더는 값싼 간식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음식이 돼가고 있다. 동네마다 편차가 있긴 하나 개당 1000원인 곳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가격이 머쓱해 그랬는지 대부분의 노점이 ‘붕어빵’ 대신 ‘잉어빵’ 현수막을 내걸고 있었다. 다만 크기는 피라미 수준. 호두과자 수준의 ‘미니 잉어빵’이라는 슬픈 혼종까지 태어났다. 비싸서 오해할 수 있지만, 생선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재료 값 때문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 유통 정보에 따르면, 10일 기준 팥(국산) 500g 소매가는 1만3064원으로 전년 8158원 대비 약 60% 올랐다. 붕어빵을 굽는 데 쓰이는 LPG(액화석유가스) 12월 가격도 ㎏당 1349.81원으로 결정됐다. 지난해 동기보다 110원 인상된 것이다. 붕어빵 노점은 대부분 값을 현찰로 받는다. 휴대폰으로 계좌 이체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를 악용하는 얌체족이 상인들을 두 번 울린다. 입금한 척 ‘먹튀’하거나, 실수인 척 2000원에서 ‘0′ 하나를 슬쩍 빼 200원만 입금하는 식으로 등쳐먹는 것이다. 엄연한 사기 행각이다.

◇틈새 시장, 기업이 찍어내는 붕어빵

한 여성이 편의점에서 파는 붕어빵을 바구니에 넣고 있다. /GS리테일

그러자 붕어빵은 점차 제도권으로 서식지를 옮기고 있다. 올해 편의점 GS25는 붕어빵 판매 매장을 5000개로 늘렸다. 작년보다 약 1000개 더 불었다. 틈새 시장을 파고든 것이다. 이곳 붕어빵 정가는 개당 1200원. 업체 측은 “수요는 많은데 노점이 줄어 편의점이 주요 구매처로 각광받고 있다”고 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도 붕어빵을 사면 커피를 할인해주는 이벤트 등으로 고객층을 공략하고 있다. ‘냉동 붕어빵’까지 출시됐다. 지난해 오뚜기가 내놓은 ‘꼬리까지 가득 찬 붕어빵’은 누적 매출 30억원을 돌파했다.

프랜차이즈 카페도 붕어빵을 속속 들이고 있다. 이디야커피는 겨울 시즌 베이커리 메뉴로 지난 9월 붕어빵을 출시해 지난달까지 누적 판매량 28만개를 넘겼다. 실제 노점 붕어빵과 유사한 한입 크기지만, 가격은 조금 더 비싼 2마리 2500원 수준. 이제는 기내식(이스타항공)에도 붕어빵이 들어가고, 신세계푸드가 내놓은 ‘올바르고 반듯한 붕어빵’처럼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어로 조리해 먹는 가정용 간편식 붕어빵도 흔해지는 추세다. “길거리 찾아 헤매지 않아도, 주머니에 현금이 없어도, 집에 오느라 다 식어버린 붕어빵 말고….”

◇옛情 그리워… 아직 거기 있나요?

1호선 청량리역 1번 출구 인근 ‘원조 붕어빵’ 풍경. 놀라운 가격, 붕어빵 5개에 1000원이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그럼에도 붕어빵은 여전히 ‘즉석’일 때 가장 큰 호소력을 지닌다. 거리에서 마음 졸이는 대신 상가에 입점하거나 정식 가게로 오픈해 피자·초콜릿 등 차별화된 앙금으로 승부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최근 방한한 미국 팝스타 두아 리파가 찾아가 더 유명해진 서울 성수동 ‘현대붕어빵’은 올해 초부터 화제였다. 옛 목공소 나무 창고를 재단장한 2평 남짓한 곳, 포장 주문만 취급하는 붕어빵을 팔기엔 충분한 공간. 인건비 절약을 위해 로봇을 도입했다. 한화로보틱스가 개발한 일종의 ‘로봇 팔’이 구워내는, 21세기형 붕어빵. 이색 풍경으로 소문이 나며 업계의 새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격표는 체감 추위에 영향을 준다. 청량리역 1번 출구로 가면 ‘붕어빵 5개 1000원’ 메뉴판을 볼 수 있다. 구청에 정식 허가받은 거리 가게. 지금도 충분히 비현실적인 가격이지만 2년 전만 해도 1000원에 7마리였다. 값을 올리는 대신 개수를 조금 줄였다. 하루에 2000개 정도 팔린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고 행선지로 가다가 잠시 내려 붕어빵을 사가거나, 모아온 동전을 내는 손님도 여럿. 주인장은 “줄이 길어지면 한 사람에게 2000원어치 이상은 팔지 않는다”고 했다. 누군가 싹쓸이해 가면 뒷사람들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기에. 이것은 온정(溫情)일 것이었다. 영하의 날씨, 받자마자 사람들이 봉투에 담긴 붕어빵을 가슴에 품었다. “따뜻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