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 '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 /박돈규 기자

타임캡슐은 어떤 시대를 대표하는 물건이나 기록을 후세에 전할 목적으로 고안된 용기다. 성스러운 유물을 보존하는 일이야 수천 년 전부터 있었지만, 일상적 물품이나 메시지를 모아 미래로 보내는 관행은 현대에 시작됐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면, 타임캡슐은 현재를 봉인해 미래로 던지는 것과 같다.

버스 토큰, 정력팬티, 공중전화 카드, 무선호출기, 불온 삐라, 택시 요금표, CD롬 드라이브.... 1994년 11월 29일 남산골 한옥마을에 매설된 ‘서울 1000년 타임캡슐’ 수장품(600점) 목록이다. 그 시절 서울의 생활과 풍습을 가늠할 수 있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물건이 적지 않다. 30년 만에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실감한다.

'서울 1000년 타임캡슐' 수장품

서울 1000년 타임캡슐은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할 목적으로 제작됐다. 보신각종을 본뜬 모양으로 직경 1.3m, 높이 2.1m, 무게는 2.5톤에 달한다. 땅속에 파묻을 땐 김영삼 대통령도 참석했다. 개봉될 2394년까지 370년을 어떻게 기다리냐고? 서울역사박물관 3층에 가면 그 타임캡슐 모형을 감상할 수 있다.

의미 있고 재미있고 봉인도 해제된 ‘타임캡슐’을 보려면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갈 일이다. ‘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 특별전이 열리는 장소. 각 분야 명사 60명이 소장해 온 물건에 깃든 이야기를 마주하면서 관람객은 새삼 깨닫는다. 개인이 겪은 일도 역사적 모멘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서울 1000년 타임캡슐 모형. /박돈규 기자

이종찬 광복회장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흑백사진, 104세 철학자 김형석의 베스트셀러 ‘영원과 사랑의 대화’, 신달자 시인의 문맹 어머니가 남긴 방명록, 이계진 아나운서의 손때 묻은 국어사전, 이길여 가천대 총장의 청진기, 양희은의 ‘아침이슬’ 음반과 청바지, ‘4전5기’ 홍수환의 챔피언 벨트, 이문열의 ‘영웅시대‘ 초판본,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의 256메가 D램....

서울 1000년 타임캡슐 수장품과 일치하는 한 가지를 거기서 발견했다. 영화 ‘서편제’. “해방 후 50년 가까이 우리는 외래 문화에 너무 기울었지요. 우리가 천시하고 버리고 살던 우리 것에 대한 자각이 사람들에게 서서히 일어나는 무렵에 ‘서편제’가 불을 지른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임권택 감독) 돌아보면 소장품 하나하나가 다 희망의 불씨였다. 현대사가 응축된 이 타임캡슐 전시(무료)는 내년 2월 16일까지.

'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에 전시 중인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 포스터와 소리북.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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