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구를 사랑한다. 일상의 양념 같은 시간이다. 한 스포츠에 집중하는 경험은 30년 전 연구년 휴가 때 미국 프로농구(NBA)에 몰입한 이래 처음이다. 그땐 농구 시즌 중 일요일 중계방송을 다섯 시간 내리 보기도 했다. 세계 최고 농구 선수들이 ‘날아다니며’ 펼치는 기예(技藝)와 투혼에 매료되었다. 학창 시절 동네에서 친구들과 농구를 즐겼던 기억도 한몫했다.
모든 스포츠 경기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오타니의 야구, 조던의 농구, 손흥민의 축구, 권투와 이종격투기 등도 다 흥미롭다. 내 경우엔 방송으로 보는 구기 종목 선호도가 축구와 농구에서 시작해 야구, 배구 순서대로 옮아갔다.
김연경 선수가 대활약한 지난 도쿄 올림픽 여자 배구가 보여주듯 멋진 배구 경기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 하지만 이런 특징은 배구를 넘어 스포츠의 보편적 특징이다. 내가 배구 경기에서 유난히 상쾌한 감흥을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배구는 쉽고 직관적이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겨루면서 공을 세 번 안에 상대 코트로 넘겨야 한다. 호쾌한 강타와 번개 같은 속공, 몸을 날리는 수비와 허를 찌르는 반격이 어우러져 짜릿한 쾌감을 준다. 가장 인상 깊은 건 공격과 수비에 성공했을 때 선수들이 환호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이다. 실점했을 때도 자기 탓이라며 몸짓하는 선수에게 서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팀플레이의 정점을 보여준다.
배구는 25점을 얻는 팀이 그 세트를 이긴다. 결국 한 세트에서 수십 번 기쁨과 격려의 제스처가 나온다. 15점 승부인 5세트까지 가는 박빙 경기라면 한 경기당 수백 번씩 선수들의 자체 응원전이 팬들의 환호 속에서 펼쳐진다. 배구는 이런 점에서 다른 스포츠와 확연히 다르다. 역동적인 클로즈업 화면이 포착한 선수들의 웃는 얼굴과 칭찬과 겸양의 몸짓·손짓이 모여 밝고 상쾌한 느낌을 준다.
상대 팀과 몸이 닿지 않게 네트로 분리한 규칙도 큰 몫을 한다. 몸과 몸이 부딪치는 스포츠도 생생한 매력이 있지만 상대 선수와 육탄 충돌할 때의 부상 위험과 감정 대립을 최소화한 게 배구의 강점이다. 공이 상대 팀 선수 몸을 강타했을 때 고개 숙여 사과하는 풍경도 신선하다. 작전 시간에 감독의 질책보다는 격려가 많은 것도 배구의 특징과 관계가 있다.
물론 이런 분석은 목가적 배구 담론일 뿐이지 현장은 크게 다르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배구계를 비롯한 스포츠 현장에 만약 폭력과 괴롭힘 관행이 아직 남아있다면 ‘배구의 철학’으로 비판하고 고쳐야 할 것이다.
배구 철학은 자본 논리로 움직이는 프로 스포츠 현실도 경시하지 않는다. 기량과 수입이 비례하는 프로 선수들의 세계는 전형적인 승자독식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평생 닦은 기예로 팀플레이에 집중하는 운동선수들의 땀방울과 환호는 어느 종목이든 그 자체로 아름답다.
축구, 야구, 배구, 농구 등 단체 경기에서 발현되는 스포츠맨십은 한국 사회에 소중한 울림을 준다. 정정당당하게 겨루되 결과에 흔쾌히 승복하면서 상대를 인정하는 페어플레이는 스포츠 바깥 세상에선 희귀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운동선수가 땀 흘려 쌓은 실력으로 선보이는 멋진 협업과 상호 격려는 증오와 비방이 넘쳐나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맑은 죽비 소리다.
단발성의 큰 행운보다는 작은 즐거움을 자주 체험하는 게 행복의 비밀이다. 배구 경기 자체가 작은 기쁨을 양산하면서 진행된다는 사실이야말로 의미심장하다. 배구는 이 결정적 지점에서 독특한 개성을 갖는다고 난 믿는다. 어떤 종목이든 스포츠에 대한 열정은 차가운 세상을 따뜻하게 덥혀준다. 세상 시름과 잡념을 배구로 치유하는 한 아마추어의 ‘배구 사랑’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