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판은 특별한 것이고, 특별함은 돈이 된다.

“12월 4일 자 호외 구해요. 신문사 안 가립니다.” “12월 14일 자 탄핵소추안 가결 호외 구합니다! 가격 제시해주세요.” 최근 중고 거래 시장에서 잇따라 목격되는 구매 희망 게시글이다. 품목은 호외(號外) 신문지. 관심도 높은 대형 사건을 재빨리 알리기 위해 신문사마다 긴급 제작해 거리에 배포하는 호외가 일종의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간주되면서 웃돈까지 붙어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한 부당 5000~6000원이 가장 흔한데, 1만원 수준에 거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루치 정보 전달의 소임을 다하고 재활용함으로 들어가곤 하던 신문지가 ‘컬렉션’의 새 품목이 돼가는 신(新)풍속도.

◇웃돈 붙여… 2030 ‘호외 컬렉션’ 불붙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 14일 오후 서울역에서 조선일보 호외가 시민들에게 배포되고 있다. 신문 제호 옆 검은색 네모 안에 '호외' 글씨가 적힌 이 신문지는 이른바 '역사 굿즈'가 됐다. /오종찬 기자

호외의 재각광을 이끈 건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이튿날 서울 광화문·여의도 및 서울역 등 유동 인구 밀집 지역에 배포됐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7년 만의 호외였다.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조선일보 등 전국지뿐 아니라 전남일보 등 지역지까지 또 한 번 호외를 발행했다. 열흘 새 호외가 두 차례나 뿌려진 이례적 상황. 이날 밤 여의도 국회의사당 일대 집회에 참여했던 한 20대 시민은 “평소 신문을 구독하지는 않지만 호외는 역사적 순간이 기록된 ‘굿즈’라는 생각이 들어 챙겼다”고 말했다.

나라를 뒤흔든 소식이 담겼기 때문이다.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의 쾌거. 한강의 모교 연세대 교내 신문 연세춘추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이튿날인 지난 10월 11일, 호외 1700부를 발행했다. 기성 신문사가 아닌 학보사에서 호외를 내는 건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 과연 올해는 ‘호외의 해’였던 것이다. 그간 종이 신문과는 다소 거리가 있던 2030세대를 중심으로 호외 인증 및 소장 열기가 퍼져나갔다. 인스타그램에는 이미 ‘#호외’ 관련 1000건에 달하는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드라마 말고 현실의 호외는 이번이 초면이네요.”

소설가 한강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다음 날 연세대 학보사 연세춘추가 발행한 호외. /뉴스1

온라인 뉴스가 보편화된 시대, 종이 신문이 지닌 물성(物性)의 가치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교수는 “가장 뜨거운 역사적 격변이 기록된 증거이자 실질적으로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이라는 점에서 종이 신문에 ‘기념품’의 가치가 강화된 것”이라며 “젊은 세대의 ‘인증 문화’를 통해 그 순간과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기억의 증표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수집하는 인간, 호모 콜렉투스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호외의 역사, 갑오변란부터 월드컵까지

그래픽=송윤혜

비정규적으로 별도 배달돼 별배달(別配達)로도 불리던 호외, 그 역사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신보가 1894년 7월 23일 자로 찍어낸 ‘일본군 경복궁 침범 사건(갑오변란)’ 호외가 국내 최초로 평가받는다. 조선신보는 일본인이 발행한 신문이었다. 한국인이 발행한 최초의 호외는 1898년 2월 19일 독립신문이 보도한, 미국 군함 메인호(號)가 쿠바 아바나항에서 폭침됐다는 소식이었다. 조선일보·동아일보가 창간한 1920년대부터 호외는 본격화됐다. 빗발친 건 1960년대였다. 습격, 납치, 화재, 북한…. 1969년에는 미국 우주선 아폴로11호의 달 착륙이 호외로 나오기도 했다. 인류 최초의 뉴스였기 때문이다.

TV 보급이 대중화되면서 잦아들었지만 호외는 계속됐다. 특히 급작스러운 지도자의 죽음, 호외의 가장 대표적인 존재 이유였다. 1979년 10월 27일 자 박정희 대통령 서거 호외가 대표적이다. 옆나라에서도 큰일이었다. 이날 발행된 일본 요미우리 호외 신문은 현재 50만원에 판매(중고나라)되고 있다.

1994년 7월 8일 새벽, 북한 김일성이 사망했다. 다음 날 각 신문사는 ‘金日成 사망’ 다섯 글자가 대문짝만 하게 찍힌 긴급 호외를 발행했다. 얼마에 거래될까? 중고 거래 앱 번개장터에는 관련 호외 4종이 35만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 당대의 가장 생생한 사료. 1997 년 8월 6일 자 KAL기 괌 추락 사고 호외 판매자는 이런 글을 남겨 놨다. “근대사를 수집하시는 분, 가치를 아시는 분께 추천 드립니다.”

◇팬덤 자극… ‘야구 우승 특별판’도

지난해 스포츠서울 10월 4일자 LG트윈스 우승 특별판. 판매자는 1만원의 가격을 제시했다. /중고나라

스포츠의 감격도 호외로 이어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 호외에 이어,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에도 본선에서 맞붙은 프랑스와 1대1로 비겨 16강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자 일부 신문사는 6월 19일 자 호외를 발행했다. 축구뿐 아니다. 지난해 10월 3일 프로야구팀 LG 트윈스가 29년 만의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하자, 다음 날 스포츠지(紙)가 동나는 소동이 벌어졌다. 호외는 아니었지만, 감동의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LG팬들이 1면에 관련 소식이 실린 스포츠 신문을 ‘싹쓸이’ 했기 때문이다. 스포츠서울은 이틀 뒤 10월 4일 자 신문을 ‘특별판’으로 2000부 제작해 잠실구장에서 무료 배포하기도 했다. 선수단 사진과 1990·1994년 우승 당시 1면 사진이 지면 곳곳에 담긴, 일종의 팬 서비스였다.

지난해 일본 닛칸스포츠가 발행한 인기 애니메이션 '주술회전' 관련 호외. 중고 호가가 4만원이 넘는다. /네이버스토어

일본에서는 이 같은 팬심(心) 공략에 더 적극적이다. 지난해 9월 22일 일간지 닛칸스포츠가 만화 회사와 손잡고 판타지 애니메이션 ‘주술회전’ 호외를 제작해 도쿄 시부야 번화가 일대에 배포했다. 전날 밤 방영분에서 인기 캐릭터 ‘고죠 사토루’가 적에 의해 시부야역 내에 봉인됐다는 사실(?)을 전하는 특별판이었다. 역시 만화의 나라. 이날 1인 1부 한정 무료 배부된 이 호외 신문은 곧장 값이 뻥튀기돼 중고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현재 국내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4만2000원에 매물이 있다.

◇패션이 된 신문지, 날개 돋치다

신문 1면을 유명 스트리트 브랜드 'Supreme' 로고만으로 꾸민 뉴욕포스트 특별판이 가판대에 놓여있다. 순식간에 품절됐고, 고가에 중고 거래되고 있다. /뉴욕포스트 인스타그램

미국 보수 성향의 타블로이드지 뉴욕포스트는 2018년 8월 13일 뉴욕 전역의 가판대에서 오전 7시 무렵 전량 품절 사태를 겪었다. 1면을 전부 비우고 ‘Supreme’(슈프림) 로고 하나만 넣은 파격 디자인 때문이다. 슈프림이 무엇인고 하니, 뉴욕 기반의 세계적 스트리트 의류 회사다. 옷·신발뿐 아니라 심지어 그냥 벽돌에도 ‘Supreme’ 로고만 박아 넣으면 실제 수십 만원에도 팔려나가는 컬트적 인기 브랜드. 보수 신문과 가장 젊은 패션의 상징이 만난 역사적인 협업, 50부짜리 신문 묶음을 통째로 사 가는 리셀러(reseller)가 부지기수로 등장한 이유였다.

뉴욕포스트 발행인 제시 안젤로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것이 수집가의 아이템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한 부 1달러에 판매된 이 신문지는 현재 5만~10만원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작전에 성공한 것이다. 이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위클리는 2019년 10월, LA 위클리는 지난해 2월 프런트 페이지를 ‘Supreme’ 로고만으로 채운 특별판(광고)을 내놨다. 이 신문지는 액자 보관용 인테리어 상품이 돼 팔리고 있다. 바야흐로 신문의 영역이 패션까지 확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