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한 참가자가 가품 가방을 들고 찍은 사진이 논란이 되자 “동대문 제품”이라며 “명품은 믹스매치”라고 말했다. 진품과 가품을 섞은 ‘믹스매치’라는 하나의 패션이라고 해명한 것. 터무니없이 싼 값에 산 제품을 자랑하는 ‘짝퉁(가품) 플렉스’도 유행한다.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샀다” “티가 나지 않는다”며 현명한 소비라 자랑하고, 호응하는 사람들이 댓글을 단다. “모조품을 잘 활용한다”가 허영 없는 사람으로 통용되는 시대. 거꾸로 “백화점에서 산 진품만 고집한다”는 말은 허영처럼 들린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지하 상가 매장에 걸린 짝퉁 제품들. 토리버치·프라다·입생로랑 같은 명품 브랜드가 한 매장에 모여 있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짝퉁’이라는 단어가 거울에 비친 것처럼 똑같다는 ‘미러급’ 복제품을 뜻하는 ‘레플리카’ 같은 단어로 대체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짝퉁 들고 다닌다고 무시당할까 쉬쉬하며 구매하던 과거와 달리, 맘카페에 “여행을 간다”는 글을 올리면 ‘진품과 다름없는 (그러므로 진품이 아닌) 제품 파는 매장 리스트’를 여행 선물처럼 내어준다.

‘믹스매치’가 트렌드로 퍼지면서 모조품을 판매하는 베트남 호찌민의 사이공스퀘어와 다낭 갤러리아 쇼핑몰의 핵심 고객은 한국인이 됐다. 지난달 초 찾은 사이공스퀘어에는 명품 브랜드 홈페이지 화면을 띄워놓고 로고나 박음질이 진품과 다르지 않은지 대놓고 비교하는 고객들이 통로를 메웠다. 명품 브랜드 핸드백과 신발을 판매하는 곳에는 여성이, 비싼 골프 브랜드나 아웃도어 제품을 파는 매장에는 남성이 몰린다.

모조품이라고 무시하지 마시라. 백화점 본점 1층에 있을 법한 명품 브랜드를 그대로 베껴 작은 백 하나에 우리 돈 30만~50만원을 받는다. 겉면에 흠집 날까 하얀 장갑 끼고 내어주는 직원은 없지만 부직포 백과 박스까지 똑같다. 명품 브랜드 팔찌나 구두까지 상품도 다양하다. 살까 말까 주저하는 손님에겐 카카오톡 아이디 적힌 명함을 슬쩍 끼워주며 언제든 연락하라고 웃는다. 한국에서 주문하면 물 건너 비행기 태워 보내준다고. 중국 상하이·광저우 짝퉁 시장에도 한국인이 몰린다.

베트남 사이공 스퀘어 후기에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짝퉁'이었다. 한국인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로 적힌 후기가 대부분이었다. /온라인 캡처

비행기 타지 않아도 살 수 있다. “정규품과 1대1로 제작한 완성도 높은 제품을 제공합니다”라고 홍보하는 국내 한 가품 업체는 40만원 초반대 티파니앤코 목걸이를 11만8000원에 팔며 ‘시리얼 넘버와 로고까지 완벽합니다’ ‘케이스·쇼핑백 포함’이라 적어 놓았다. 지난 6일 이런 후기가 달렸다. “선물했어요. 여자친구가 좋아해요.”

강남고속터미널 지하 상가에는 ‘샤넬’ ‘버버리’ 같은 명품 브랜드를 종이에 적은 가게가 흔하다. 소위 ㅇㅇ스타일이라 불리는 가품. 온라인 쇼핑몰이나 SNS에서는 st.라는 약어로 표기한다. 샤넬 st.는 샤넬을 베낀 제품이라는 뜻.

중고 명품 매입 업체 관계자들은 “신상품 디자인에 과거 제품에 쓰던 부품이 달려 있거나, 각인이 너무 깔끔하거나 번쩍번쩍 광이 난다면 가품이 아닌가 의심한다”고 했다. 명품 브랜드 제품의 각인은 생각보다 깔끔하지 않고, 생각보다 허술하다는 뜻밖의 고백(?). 몸값 높은 짝퉁의 경우 정품보다 바느질이 더 촘촘하고, 퀄리티도 좋다는 후기도 있다.

지난 9일 부산 강서구 부산세관신항지정장치장에서 부산세관 직원들이 유통업자로부터 압수한 200억원 상당의 중국산 짝퉁 제품 1만여점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지연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소비재 담당 파트너는 “과거에는 구매력이 충분하지 않은 소비자가 짝퉁을 샀다면, 최근엔 진품은 집에 모셔놓고 편하게 들고 다닐 용도로 짝퉁을 사는 중산층·부유층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커머스 업체를 중심으로 가품 논란이 계속되면서 제값 주고 사도 가짜를 살 수 있다는 공포가 만연한 것도 실용적 짝퉁 소비가 퍼진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얼마 전 경찰은 몸통에 스타벅스 문신을 새긴 텀블러 등을 비싸게 팔아 13억원을 챙긴 일당을 적발했다. 여기서 나온 행동 지침은 “너무 저렴하면 의심하라.” 하지만 경찰 역시 해당 제품을 구매해 경찰서 기념품으로 제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샀다.

테무에서 유명 브랜드 조명의 10분의 1 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판매 중인 모조품. /온라인 캡처

‘진품과 다름없는 가품’은 하나의 놀이가 되기도 한다. “나는 테무산(産)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이다. 테무는 저가 제품을 내세운 중국 이커머스 업체. 명품·유명 브랜드 제품을 조악하게 베낀 모조품이 많아 실물을 받아보고 실망했다는 후기가 수두룩하다. 예컨대 ‘테무산 장동건’은 빠른 속도로 뛰어가면서 보면 장동건과 비슷하게 잘생긴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반인이라는 의미. 결국 가짜라는 뜻이지만 ‘진짜와 비슷하다’는 부분에 방점을 찍는 게 요즘 세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