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에서 김재홍 사장이 운영하는 로또 판매점. 그에게도 새해 소망이 있다. /강성곤 제공

방송 일이 덧없고 버거울 때면 영등포 시장에 가곤 했다. 노포에서 순댓국밥을 배불리 먹고 로또를 하면 기분이 나아졌다. 나는 지금도 진성(眞性) 로또인에 속한다. 우리는 매주 2장 이상 로또를 사며 1등 814만분의 1일 당첨 확률이란 말보다 ‘맞느냐 안 맞느냐’ 50%의 기대치를 갖고 산다. 해도 바뀌고 해서 한갓진 시간을 택해 대박로또집 김 사장을 만났다. 20년 지기다.

성명 김재홍. 충남 당진생. 59세. 어려서 소아마비 장애를 얻어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다. 전문대를 나와 인형 사출 공장에 들어가 기능공을 거쳐 사무직이 되었다. 거래처에서 참한 여성을 눈여겨봤는데 때로는 괄괄해 이상하다 싶더니만 1층에서 본 그녀가 금세 2층에 있는 게 아닌가. 결정적으로 옷이 달랐다. 쌍둥이였다. 동생을 점찍고 청혼을 하려니 처가 쪽 반대가 심했다. 이유는 짐작대로 지체장애 때문. 고맙게도 언니가 그의 성실성을 보증하며 방어벽을 쳐주어 목표를 이뤘다. 프러포즈는 신랑·신부 이름을 새긴 막도장과 저축 통장. 즉효였다.

1990년대 계전기를 다루는 중견기업으로 이직해 잘나가다 IMF 사태가 터져 실직한다. 복덕방도 하고 판촉물 납품도 해보고 버텼지만 잘 안됐다. 그러던 차 2000년대 초반, 알고 지내던 은행원이 로또집을 권했다. 운 좋게 사업권을 따냈고 오늘에 이른다. 한때는 연 수입 9000만원, 월수로 750까지도 벌어봤다. 22년째인 지금은 300~400 남짓이지만 만족하고 산다.

김재홍 사장이 운영하는 로또 판매점. 자동이 70%, 반자동·수동 30% 당첨으로 자동이 낫다. /강성곤 제공

그가 말하는 로또와 로또인 뒷얘기다. 우선 자동이냐, 수동이냐 문제. 자동이 70%, 반자동·수동 30% 당첨으로 자동이 낫다. 자세와 태도도 중요하다. “왜 이렇게 안 맞아!” “당신 가게는 터가 안 좋은가 봐.” 이런 부류는 내내 실패다. 로또는 기분 좋게 해야 한다. 2009년 1등 당첨이 터졌다. 문 닫으려는데 전화가 왔다. “당신 때문에 운명이 바뀌었다. 고맙다. 밥 사겠다.” 술 취한 목소리가 맘에 걸렸으나 점심 내내 기다렸다. 끝내 안 와 끼니를 걸렀다.

다음은 꿈에 관한 것. 조상님·세종대왕·이순신 장군은 명실공히 블루칩이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악수를 하거나 밥을 같이 먹거나 몇 마디라도 덕담을 나눠야 진짜다. 아니면 꽝이다. 돼지와 똥도 마찬가지다. 그저 본 것만으론 부족하다. 달려오거나 품에 안거나 묻히고 범벅이 돼야 실효적이다. 2등 당첨자들과의 경험은? 이월 당첨금이 사라진 이후 요즘은 세금 떼고 나면 4500만원 정도가 손에 떨어진다. 대개는 감사 표시로 10만원짜리 수표 한 장 놓고 간다.

이상한 손님은? 누구에게나 꽂히는 번호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만 주야장천 칠하는 수동과 반자동파가 많다. 그러나 숫자를 시간으로 치환하는 사람이 있더라는 얘기. 가령 12시 38분이 되면 미친 듯이 카운터로 와서는 빨리 자동으로 몇 장 뽑으라는 식. 12와 38이 행운의 숫자인 셈. 앞에 다른 손님이라도 있는 날엔 그 시각 넘길까 봐 보통 성화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요란 떠는 건 헛발질이다. 자기만의 주술에 걸린 채 미신 속에 사는 것. 별 효과 없다.

야박하게 살면 벌 받는 일은 있는 것 같다. 김 사장은 짬이 나면 스포츠 자료를 분석한다. 스포츠토토 매출도 만만치 않기 때문. 한번은 자신의 조언으로 손님 하나가 베팅을 쳐 1000만원을 벌었다. 사례하겠다더니 차일피일, 2~3개월 후 지인에게 안부를 물었더니 사고로 죽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기도 당했다. 인상 좋고 화술 좋은 사회 친구와 동업했었다. (나도 여러 번 봤다!) 집에도 초대받아 가곤 했는데 작전이었다. 안심하고 자기한테 돈을 빌려줘도 된다는 밑밥이었던 셈. ‘급전이 필요하다’ ‘집을 넓힌다’ ‘목 좋은 땅을 산다’ 하며 조금씩 꿔간 돈이 8000만원. 소송해 최종 판결에서 이겼으나 돈은 못 받았다. 사기꾼들은 이럴 때 미리 돈을 다른 데다 빼돌리곤 ‘배 째라’ 행태를 보인다. 꼼짝없이 당했다. 법의 맹점 아니냐며 낯빛이 잠시 붉어졌다.

김재홍 사장의 장기기증등록증. "장애인으로 살면서 사실 혜택이 많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이죠. 무엇으로 나라와 사회에 보답할까 생각하다 얼마 전 장기 기증 서약했습니다.” /강성곤 제공

김 사장은 단골에겐 1만원어치 사면 로또 한 줄(1000원)을 선물로 준다. 푸른빛의 공식 로또 봉투에 꼭 넣어서 말이다. 그러곤 “1등 되세요”라고 안 하고 “제일 좋은 것 맞으세요”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 당첨금이 다 다르게 작동해요. 1등을 맞아도 그 돈 때문에 되레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분은 사업이 기사회생하기도 하니까요.”

장애인으로서 삶도 이야기했다.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살면서 사실 혜택이 많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이죠. 그런데도 차별한다고, 지원이 부족하다고 노상 불평만 해대는 사람들, 싫어합니다. 무엇으로 나라와 사회에 보답할까 생각해요. 그러다 얼마 전 장기 기증 서약했습니다.” 새해 소망은 무얼까. “아내가 몇 년 전 심장판막 수술을 받았어요. 늘 조마조마합니다. 재발할까 봐. 아내는 제 은인이에요. 건강하기만 바랄 뿐입니다.” 김 사장은 예의 미륵불 같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