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외부 미팅이나 갑자기 들이닥친 급한 업무가 아니면 저를 포함한 네 명의 팀원은 으레 점심을 같이 합니다. 천천히 걸어서 다녀올 수 있는 회사 근처 식당가를 찾을 때가 많고, 조금 한가한 날에는 근교에 있는 음식점에 미리 메뉴를 주문한 뒤 자동차 한 대로 모여 다녀오기도 합니다. 간혹 점심시간을 앞두고 업무용 메신저에 이런 글이 올라오는 날이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몸이 좋지 않아 죽을 먹겠습니다. 다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소중한 점심시간, 다른 이들의 메뉴까지 한정 짓기 미안한 마음에 스스로 열외를 선언한 것입니다. 보통 이럴 때면 ‘저도 마침 감기 기운이 있는데 같이 가요’라거나 ‘저도 죽 좋습니다’ 같은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끈끈한 동료애의 산물이나 낙오된 팀원을 위한 배려만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좁은 사무실에서 종일 함께 일하다 보면 서로 감기를 앓는 시기가 비슷했습니다. 격무에 시달리던 끝에 너도나도 몸살이 날 때도 있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기 전이라 마스크 쓰는 문화도 흔치 않았고 어지간히 아프지 않은 이상 꾸역꾸역 출근하던 때였습니다.

지난달, 저는 전국을 돌며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 잦았습니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겨울방학을 하기 전 비교적 자유로운 시기를 활용해 외부 강사 초청 강좌 프로그램이 많이 열린 덕분입니다. 한 가지 눈에 띈 것은 어느 지역의 학교든 젖은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것. 요즘 A형 독감이 유행이라고, 마치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야기를 다수의 선생님에게 들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나 버스 안에서도 사람들의 기침 소리는 좀처럼 제 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며칠을 호되게 앓았습니다. 검사 결과 코로나나 독감은 아니었지만, 코가 헐 정도로 콧물을 흘렸고 목소리가 변할 정도로 기침을 했습니다. 발열과 오한이 번갈아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연말에 잡아둔 약속들은 양해를 구하고 모두 취소했습니다. 그러다 받게 된 마음 가까운 이의 부고. 조문객이 비교적 뜸할 시간을 생각해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조문을 마치고 미리 그곳에 와 있던 지인들과 합류했습니다. 이미 식사를 마친 세 명 중 한 선배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다행히 감기가 거의 끝나간다고 했습니다. 이번처럼 독하고 긴 감기를 앓아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저도 마스크를 벗고 제 앞에 놓인 따뜻한 밥과 뜨거운 국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먹고살다’가 한 단어로 등재돼 있습니다. 주로 ‘생계를 유지하다’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고요. 살아가는 데 먹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또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와 함께 무엇을 먹는가의 문제는 곧 누구와 함께 어떻게 사는가라는 의미가 되니까요. 그러니 분명한 것은 같이 살기 위해서는 같이 먹어야 한다는 것. 같이 슬퍼해야 같이 기뻐할 수도 있다는 것. 말없이 그릇을 말끔히 비우며 생각한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