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면 1939년 9월 3일 런던. 연극 ‘라스트 세션(Freud’s Last Session)’은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한 이날,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서재로 관객을 데려간다. 작가이자 옥스퍼드대 교수 C S 루이스가 그의 집에 방문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신은 존재하는가. 무신론자 프로이트는 이 질문에 대한 유신론자 루이스의 변증을 궁금해한다. 논쟁의 시작이다. 마침 라디오에서 체임벌린 총리가 독일과 전면전을 선포하며 “신의 가호가 있기를”이라고 말하자 프로이트는 빈정거린다. “당신의 그 하나님에게 감사드려야겠소. 나에겐 암(구강암)이라는 축복을 내려준 덕분에 또 다른 전쟁은 겪지 않아도 되니.”
루이스가 “역사는 괴물들로 가득 차 있죠.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았고요”라고 방어하자 프로이트는 “또 다른 괴물들을 맞아들이려고 살아남은 거지. 인간들은 적(敵) 없이는 살 수 없어. 히틀러처럼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가장 큰 동맹은 항상 신이었소”라며 허를 찌른다. 루이스는 “히틀러라는 악이 오히려 선을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고 재반박한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두 세계를 대표하지만, 공습 사이렌을 듣고 엎드려 허겁지겁 방독면을 쓸 땐 똑같은 인간이었다. 뇌는 공포를 붙들고만 있을 순 없다. 그럼 아무것도 못하니까. 농담을 해서라도 공포를 떨쳐내야 한다. 이 연극의 마지막엔 음미할 만한 일화가 나온다.
어느 마을에 무신론자가 살았다. 직업은 보험 외판원이었다. 이 사람이 죽어가면서 그 마을 목사에게 한번 와달라고 부탁했다. 가족들은 깜짝 놀라며 의아해했다. 임종을 앞둔 무신론자가 왜 하필 목사를 불렀을까. 저승이 두려운 나머지 신을 믿기로 결심한 것일까.
저녁에 목사가 집에 도착했다. 무신론자와 목사는 밤새 싸웠다. 마침내 새벽이 돼서야 지친 목사는 비틀거리며 그 집에서 나갔다. 얼마 후 보험 외판원은 숨을 거뒀다. 여전히 무신론자인 채로. 하지만 그 목사는 보험에 가입했다. 종합보험. 보험 외판원은 마지막까지 ‘영업’을 한 셈이다.
삶이 곧 전쟁이다. 혼돈의 시대에 프로이트가 무대에서 들려준 ‘목사와 보험 외판원’ 이야기를 되새겨 본다. 루이스는 다 듣고 나서 “재밌네요. 그런 거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요”라고 말한다. “농담 말이오?”라고 프로이트가 묻자 루이스가 답한다. “아니요, 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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