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혼란해도 누군가는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 최근 탄핵 집회 현장에서 수상한(?) 핫팩이 배포됐다. 겉면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얼굴이 만화 캐릭터처럼 그려진 로고가 담겨 있었다. 신규 발행된 가상 화폐, 이른바 ‘이재명 코인’ 홍보물이었다. 정치 테마주(株)처럼, 향후 정국에 따라 값어치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감으로 투자자를 꾀는 ‘정치인 밈 코인(meme coin)’. 현실의 민주당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아직 주요 거래소에 상장되지도 않은 잡(雜)코인이지만, 해당 코인 텔레그램 채팅방에는 3000여 명의 홀더가 모여 매일 “가즈아”를 외치고 있다. “조기 대선 국면만 오면 가격 난리 날 겁니다.” “이러다 저쪽에서는 ‘김문수 코인’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밈’으로 ‘돈’ 번다

물론 이미 나와 있다. 소셜미디어 계정을 클릭하면 고용노동부(김문수 장관) 트위터로 연결되는 장난스러운 수준부터, 번듯한 홈페이지까지 갖추고 “좋아하는 정치인의 코인을 구매해 그들의 성공을 축하하는 데 동참할 수 있다”고 홍보하는 코인까지 나타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름을 딴 밈 코인도 이미 수십 개 존재한다. 수형복을 입고 감옥에 갇혀 있거나, 근엄한 포즈로 “Fight”를 외치는 윤 대통령의 합성 사진을 로고로 삼는다. 이 역시 국민의힘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쯤에서 밈 코인이 뭔지 간단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밈(meme)은 ‘문화 유전자’라는 뜻을 지닌 용어지만, 그냥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웃기는 사진’ 정도로 이해하면 쉽다. 피식, 실소를 야기하는 유명인이나 유명한 장면이 농축된 한 장의 이미지. 밈 코인은 이런 이미지를 기반으로 발행한 코인이다. 실질적 가치는 없다. 구체적 비전도 없다. 관심과 재미, 오로지 그것을 위해 탄생한 놀이에 가깝다.
북한 김정은이 밈 코인 단골 소재로 사용되는 이유다. 놀려먹을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뚱한 표정의 어린 독재자, 뚱뚱한 동물이나 핵탄두를 껴안은 깜찍한 캐릭터로 묘사된 여러 사진·그림이 동원된다. ‘밈 코인’의 확장에는 이성보다 감성이 중요하다. 일단 재밌어야 한다. 재밌어 보이면 심심풀이 껌처럼 사람들이 구매한다. 이때 유명 정치인은 가장 손쉬운 타깃. 누구나 알고, 패러디하기 좋고, 미디어에 지속 노출되며, 팬덤도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껌값이 쌓이면 무시할 수 없는 목돈이 된다. 대형 거래소에 상장을 거듭하면서 더는 장난으로 취급할 수 없는 체급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폴리티파이, 진짜 대통령까지 가세
MAGA 코인이 대표적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후보 시절부터 꾸준히 외쳐댄 구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와 트럼프 얼굴 사진을 활용해 그의 지지자가 재빨리 만들어낸 코인. 돌발 발언과 기행으로 늘 화제의 중심에 놓이는 인물, 코인 업계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고 삽시간에 거대 팬덤을 형성했다. MAGA 코인은 발행 1년 만에 개당 2만5000원(약 17.5달러) 수준까지 치솟았다. 최저가 대비 1540배 넘게 뛴 것이다. 암살 시도 실패 등의 사건·사고가 폭등에 기름을 부었다. ‘수퍼 트럼프’ ‘MAGA 어게인’ ‘도랜드 트렘프’ 등의 유사 밈 코인이 줄을 이었다.
정치인을 모티브로 삼은 밈 코인을 묶어 ‘폴리티파이(PolitiFi·Politics+Finance)’라고 한다. 가상 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게코에 따르면, 현재 폴리티파이 시가총액은 약 6조원 규모. 조 바이든·카멀라 해리스 등의 이름을 딴 밈 코인에 이어, 최근 신설된 정부효율부(DOGE) 밈 코인까지 등장했다. 가히 폴리티파이 전성시대.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김승주 교수는 “극성 정치 유튜버들이 자극적 영상을 계속 올려 돈을 버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며 “시장에 내놨을 때 사람들이 몰려와 흥분하기 가장 좋은 소재가 바로 정치인임을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세계 최초, 대통령이 직접 관여한 밈 코인까지 등장했다. 트럼프가 공식 발행한 ‘오피셜 트럼프’ 코인이 지난달 17일 출시된 것이다. 거래 시작 하루 만에 약 400배 올랐고 사흘 뒤 한국 코인 거래소(코인원·빗썸)에도 진출했다. 부창부수라 했던가.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마저 밈 코인을 만들었으니 ‘멜라니아 코인’은 출시 직후 240배 정도 폭등했다. 혼란을 틈타 장녀 이방카의 이름을 딴 코인도 나왔는데, 다만 이방카는 소셜미디어에 “내 동의 없이 발행된 코인”이라며 “소비자를 속이고 힘들게 번 돈을 가로챌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농담인가 금융인가… 새 문화 현상?
5분이면 누구나(본 기자 포함) 밈 코인을 만들 수 있다. 직접 해봤다. 솔라나·트론·리플 등 기존 코인 회사들이 지난해부터 자체 ‘밈 코인 제작’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수요가 워낙 많으니까. 이 중 한 곳에 들어가 ‘코인 생성’ 버튼을 눌렀다. 가상 화폐 지갑을 연결하고, 코인 이름을 입력하고, 간단한 설명을 써 넣고, 이미지를 업로드하니 끝. ‘CHOSUN’ 코인이 생겨났다. 지독한 컴맹만 아니면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 윤석열 코인, 이재명 코인, 김문수 코인 등이 툭툭 튀어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세계 최대 코인 거래소 바이낸스는 최근 밈 코인 리포트를 발간해 “밈 코인은 기술 혁신이 아닌 인터넷 문화의 유머와 커뮤니티의 혼란 속에서 번창하는 독특한 가상 화폐”라면서 “다음 금융 현상이 될지 그저 또 다른 농담에 그칠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초강대국에 군림하는 퍼스트 커플(트럼프 부부)까지 유행에 편승할 때 밈 코인은 더는 틈새시장의 호기심이 아니라 본격적인 문화 현상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기술이나 가치가 아니라 순전히 재미와 트렌드에 의존하다 보니, 지속적인 충성심을 창출하지 못하는 99.9%는 디지털 쓰레기로 전락한다.
◇위험한 열기… 법적 다툼까지
밈 코인 열풍을 주도한 세계 최대 밈 코인 생성 플랫폼 펌프펀은 지난달 법적 다툼에 휘말렸다. 고위험 코인의 발행·마케팅으로 약 5억달러(약 7300억원)의 수수료 수익을 챙겨 갔다며 한 투자자가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누구나 몇 분 만에 거의 가치 없는 코인을 만들고 판매할 수 있는 자동화된 도구를 제공”했으며 “펌프 앤드 덤프(가격을 부풀린 뒤 매도) 및 폰지 사기의 진화 형태가 그 운영 방식에 내재돼 있다”는 주장이다. 펌프펀은 이미지·이름 등을 무단 사용한 코인을 방치해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도 피소된 상태다.
미국 시민 단체 퍼블릭 시티즌은 지난 5일 트럼프가 대통령 지위에서 자신의 밈 코인을 홍보한 행위가 연방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법무부 측에 정밀 조사를 촉구했다. 인기가 높아질수록 경고음도 커진다. 한탕주의를 노린 작전 세력이 숱하고 ‘먹튀’ 사기도 예사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폴리티파이는 정치 이슈에 따른 가격 변동이 큰 위험 자산. 코인 구제는 나랏님도 못 하는 것일까? 10만원대까지 치솟았던 오피셜 트럼프 코인은 8일 현재 2만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