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커피 가격 주가지수 연동제 실시’라는 종이 포스터가 카페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지난주 금요일, 서울 테헤란로 인근 ‘웍스프레소’ 아메리카노 가격은 2517.37원이었다. 이곳은 매주 금요일 코스피(KOSPI) 종가를 다음 주 커피값으로 삼기 때문이다. 가격이 매주 바뀌기에 메뉴판에는 숫자판이 부착돼 있다. 이날 오후 5시 30분, 라스트 오더가 끝나자 카페 사장 이용현씨가 코스피를 확인했다. “조금 올랐네요.” 숫자판을 2521.92로 조정했다. “소수점 이하는 깔끔하게 할인. 계산 번거롭잖아요.”

카페 '웍스프레소' 주인장은 매주 금요일 오후 코스피 종가대로 아메리카노 가격을 조정한다. /정상혁 기자
카페 '웍스프레소' 주인장은 매주 금요일 오후 코스피 종가대로 아메리카노 가격을 조정한다. /정상혁 기자

주가 따라 가는 커피값, 이 희한한 동행은 2023년 시작됐다. 코스피 지수가 2200 아래로 곤두박질치던 때였다. 지갑이 얼어붙었다. 이씨는 “커피 주문할 때만이라도 기분 좋아질 이벤트를 마련한 것”이라며 “내가 아무리 손해를 본다 한들 한 잔에 100~200원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2012년 카페 개점 당시 코스피는 1900 언저리였다. 광고 회사 출신인 이씨는 “직장인 응원 차원에서 ‘코스피 2000 도달까지 커피 2000원’ 오픈 행사를 열었고 2500을 거쳐 3000을 넘기며 행사를 종료했었다”며 “증시가 다시 불안해지면서 손님들의 요구로 아예 ‘주가 연동 가격제’를 실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시 3000 넘어가면 기분 좋게 끝!”

경기 침체를 소소한 재미로 헤쳐 나가려는 소시민의 알뜰살뜰한 노력, 여의도 증권가에도 있다. ‘서울안심정육 서여의도점’은 코스피 종가가 상승 마감할 시 샴페인 한 병, 하락 마감 시 소주 무제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오르나 내리나 어쨌든 이득. 단체 회식의 경우에는 은근히 주가 하락을 바라는(?) 손님들도 더러 있다고. ‘소울한우 여의도샛강역점’에서도 마찬가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식당 관계자는 “샴페인은 축하, 소주는 위로의 의미”라며 “주식 생각에 침울해지지 않고 잠시나마 기분 좋은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당분간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깃집의 특별한 서비스. 코스피가 오르면 샴페인, 떨어지면 소주가 공짜다. /서울안심정육 서여의도점
고깃집의 특별한 서비스. 코스피가 오르면 샴페인, 떨어지면 소주가 공짜다. /서울안심정육 서여의도점

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지만 시장은 냉정하다. 일본에는 회사 주가에 따라 메뉴가 달라지는 구내식당이 등장한 바 있다. 닛신(日淸)식품이 지난 2016년 문을 연 ‘가부테리아’. 주식을 뜻하는 ‘가부(株)’와 카페테리아를 합친 이름. 월말 주가가 전달 평균보다 오르면 최고급 참치 해체 쇼까지 열어주고, 주가가 떨어지면 빵·어묵·우유 등 1950년대 학교 급식 수준의 소박한 메뉴가 나오는 식이다. 배식 코너 위에 주가 현황을 실시간 나타내는 전광판까지 부착했다. 당근과 채찍. 닛신식품 측은 “기업 가치를 반영하는 주가에 대한 구성원들의 의식을 높이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미국 환율에 따라 매일 가격이 달라지는 해산물 식당 안내판. 밥값이 1인당 101달러로 책정돼있다. /네이버 블로그
미국 환율에 따라 매일 가격이 달라지는 해산물 식당 안내판. 밥값이 1인당 101달러로 책정돼있다. /네이버 블로그

‘환율 연동 가격제’를 실시하는 식당도 생겨났다. 지난해 12월 노량진 수산시장에 들어선 해산물 오마카세 레스토랑 ‘노량진101’ 가격은 1인당 ‘101달러’. 가게 앞에 “전일 우리은행 최종 고시 매매 기준율에 따라 이용 금액이 매일 변동 및 적용된다”고 밝힌 안내판이 놓여 있다. 랍스터 무제한 식당 프랜차이즈 ‘바이킹스워프’는 성인 ‘110달러’를 받는다. “랍스터 등 갑각류를 북미에서 직접 수입해오기 때문”이라는 설명. 이국적 분위기를 내는 독특한 가격 마케팅이 눈길을 끌지만,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가격표에 달러 등의 환율이 고지돼 소비자가 가격 변동을 정확히 인지할 수만 있다면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계산이 어설프면 화근이 된다. 지난해 대구에 개업한 한 일식집은 메뉴판 가격을 엔화(¥)로만 표기해 화제를 모았다. “엔화로 표기된 가격에 ‘0’을 더 붙여 원화로 계산해 주세요.” ‘야키소바(1480¥)’는 곧 1만4800원을 내라는 뜻. 다만 엔저(低) 시기였기에 일괄 10배를 적용하면 환율보다 비싼 값을 치르는 셈이라는 게 문제였다. 현지 감성을 최대화하는 콘셉트라는 해명에도 “엔화로 표기했으면 가격도 환율대로 받는 게 맞지 않냐”는 비판이 빗발쳤다. 결국 점주는 본전도 못 찾고 메뉴판을 원화로 수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