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었던 독감 백신 무료 접종이 전면 중단된 것은 하루 전인 21일 오후 “백신은 반드시 냉장 유통해야 하는데 일부가 상온(常溫)에 노출됐다”는 제보가 접수됐고 사실로 확인됐기 때문이라고 질병관리청이 밝혔다. 만약 제보가 없었다면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른 채 13~18세 청소년 234만명 등이 백신을 맞을 뻔했다. 국민 건강과 직결된 백신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을 정부는 모르고 있었다.

22일 서울 송파구 한 소아청소년과 병원에 무료 독감 예방접종 일시중단 안내문이 붙어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21일 오후 인플루엔자 백신 조달 계약 업체의 유통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해 오늘부터 시작되는 국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을 일시 중단했다. 2020.9.22 /박상훈 기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날 “독감 백신 무료 접종 사업을 2주간 중단한다”며 “백신 일부가 2~8도를 유지해야 하는 냉장 유통 기준을 위반하고 상온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복수의 제보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백신은 이날부터 13~18세 청소년 234만명 등을 대상으로 접종할 예정이었던 500만명분(생후 6개월~9세 미만은 2회 접종)이다. 정부는 올해 2964만명분(유료 접종 포함)을 준비했고, 1259만명분은 정부가 공급한다. 이를 담당하는 의약품 유통업체 신성약품이 지난 21일까지 500만명분을 보건소 등에 배달하는 과정에서 일부가 5분 정도 상온에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질병관리청은 500만명분 가운데 이런 문제가 있는 백신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만 밝혔다. 최악의 경우 500만명분 전체를 폐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후 6개월~9세 미만 어린이는 지난 8일부터 백신 접종이 이미 시작돼 이미 11만8000명이 맞았지만, 질병관리청은 “다른 경로로 유통돼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정은경 청장은 “2주간 안전성과 백신 접종 효과 등을 시험해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무료 예방 접종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올해 코로나와 인플루엔자가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twindemic·2개의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무료 접종 대상을 작년보다 519만명 늘려 1900만명으로 확대했다.

한편 국회는 이날 올해 네 번째 추경을 통과시키면서 의료급여 수급권자(70만명), 장애인연금·수당 수급자(35만명) 등 105만명을 무료 접종 대상에 추가했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작년보다 접종 예상 대상을 500만명분 이상 늘렸고, 매년 200만명분이 접종되지 않고 폐기되기 때문에 추가 접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약 문제가 된 백신 가운데 상당한 규모를 폐기하게 되는 경우 백신 부족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