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국가고시 미응시 문제 사과 성명 발표

서울대병원과 연세대·고려대·인하대 의료원 등 대학병원 4곳의 병원장들이 8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반대해 의사 국가시험 응시를 철회한 의대생들에게 응시 기회를 달라고 했다. 의대생들을 대신해 사과한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사과를 하고 불과 25분 만에 “국민이 양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응시 기회를 주기 어렵다"고 했다. 복지부는 줄곧 이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병원장 90도 사과도 거절한 복지부

김연수 서울대병원장(국립대병원협회장)과 김영모 인하대의료원장(사립대의료원협의회장), 김영훈 고려대 의료원장, 윤동섭 연세대 의료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4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인하대 병원장 “선배들이 질책 받겠다” -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요 대학병원장들이 의과대학 졸업 예정자들의 의사 국가고시 미응시에 대해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왼쪽부터 윤동섭 연세대의료원장, 김연수 서울대학병원장, 김영모 인하대의료원장, 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이다. /장련성 기자

병원장들은 “국민들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한다”며 “6년 이상 열심히 학업에 전념한 의대생들이 미래 의사로서 환자 곁을 지킬 수 있도록 한 번 기회를 허락해 달라”고 했다. 또 “질책은 선배들에게 해달라”고 했다. 병원장들의 이날 브리핑은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와 서울시 25개 구 의사회 회장단이 권익위에 의사 국시 실기시험 문제 해결을 위한 고충민원을 신청했고, 국시를 주관하는 이윤성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 원장도 7일 전현희 권익위원장과 만나 국시 재응시 기회 부여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창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이날 오전 11시 5분쯤 브리핑에서 “주요 대학병원장들이 뒤늦게라도 사과의 뜻을 표현한 것은 다행이지만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이 직접 사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응시 기회를 부여하는 방안을 거론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의대생들은 직접적으로 사과 의사를 밝힌 바 없다.

◇"당·정·청 다음 주까지 구제 방안 논의"

다만 보건복지부의 이런 방침과 별개로 청와대와 민주당, 총리실 등은 국민 여론 동향을 살피면서도 다음 주까지는 응시 기회를 다시 주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응시가 무산될 경우 내년에 약 2700명의 의사를 배출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국의 대학병원 등은 당장 인턴을 구하기 어렵게 되고, 몇 년 후엔 공중보건의와 군의관 수급에도 차질이 빚어진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8일 “청와대와 총리실, 여당 수뇌부 등이 (의대생들의 국시 재응시 구제 방안을) 논의하되 국민 여론을 보고 결정할 것”이라며 “의대생 국시 재응시 문제는 복지부 선을 떠났다”고 했다. 또 “다음 주 안으로는 결정돼야 의대생들이 올해 안에 국시를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여당이 결자해지해야"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방적 의료정책을 강행한 정부·여당이 의료 공백 사태를 막기 위한 결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윤석준 고려대 예방의학 교수는 “올해 의료계 파업과 의대생 국시 거부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폭발한 것”이라며 “불신의 벽을 해소하는 일은 당사자인 정부, 여당이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이윤성 원장은 “재응시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이득 볼 사람은 없는 반면, 의료 공백에 따른 부작용은 10년 가까이 갈 수 있다”고 했다.

앞서 국시 응시 대상 의대생(3172명)의 86%인 2726명은 당정이 7월 23일 의대 정원 확대 등을 발표하자 이에 항의하며 국시에 응시하지 않았다. 지난달 4일 정부가 의대 증원 등을 원점 재검토하겠다고 하면서 의·정 갈등은 일단락됐고, 의대생들도 같은 달 24일 “국시 재응시를 희망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국시 응시 기회를 다시 주기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