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일 서울 대원외국어고등학교 2학년 권모양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장기 기증 희망자로 등록했다. 만약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되면 각막, 심장, 간 등 장기 9개를 기증하겠다고 했다. 부모에게 동의를 받지 않고 혼자서 기증 희망자 등록을 마쳤다. 권양은 “등록 후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상의했다면 말렸을 것’이라고 하셨지만, 사후에 장기 기증을 통해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권양은 작년 7월부터 16세 이상이면 부모 동의 없이도 장기 기증 희망자로 등록할 수 있도록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령이 개정되면서 혼자서 등록을 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19세 이상이어야 부모 동의 없이 신청할 수 있었다. 18세 이하는 부모 등 법정 대리인의 서명과 가족관계증명서 등 증빙 서류가 필요했다.

지난 7월에는 서울 이화외고 학생 15명이 한꺼번에 장기 기증 희망자로 등록했다. 기증 서약에 참여한 2학년 고모양은 “죽어서도 어떤 사람의 삶에서 정말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이 된다면 그게 허무하지 않고 의미 있다고 생각해 결심했다”고 밝혔다.

26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이들과 같은 청소년 장기 기증 희망자가 크게 늘었다. 작년 8월부터 올 7월까지 16~18세 청소년의 장기 기증 희망 등록은 3225명으로 219명에 그쳤던 이전 1년(2018년 8월~2019년 7월)에 비해 14.7배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장기 기증 희망 등록자는 9만780명에서 7만6389명으로 16%나 줄었는데 16~18세 청소년만 크게 늘어났다. 운동본부 관계자는 “봉사 활동 시간 등 보상은 따로 없는데도 자발적 기증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복지부가 지정한 장기 기증 희망 서약 등록 기관이다. 국내 장기 기증 희망 서약 대부분이 운동본부를 통해 이뤄진다. 다만 기증 희망 등록은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성이 없다. 본인이 희망 서약을 했어도 사후에 유가족이 반대하면 실제 기증은 이뤄지지 않는다. 본인이 희망자 등록 후 언제든 취소할 수도 있다. 한국은 인구 100만명당 장기 기증이 8.68명으로 스페인(48.9명), 미국(36.88명) 등에 비해 크게 낮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장기 기증 희망자로 등록한 서울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9월 초 서울 충정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회의실에서 기증 희망자에 제공되는 등록증 'save9' 카드를 들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save9’이란 뇌사 시 장기 기증을 통해 각막·폐·신장 등 9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