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텍이 개발 중인 코로나 백신이 연내 시판되더라도 내년까지 공급 가능한 13억5000만회분의 90%인 12억회분 이상을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에서 선구매해놓은 상황이라 국내 도입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화이자는 물론 어떤 제약사와도 코로나 백신 선구매 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다.
주요국들의 화이자 백신 선구매 물량은 미국 6억회분(5억회분은 추가 구입 선택권), EU 3억회분(1억회분은 추가 구입 선택권), 일본 1억2000만회분, 멕시코 3440만회분, 영국 3000만회분 등이다. 화이자 백신의 경우 1인당 2회 접종하는 방식이다. 캐나다, 호주, 칠레, 뉴질랜드 등도 선구매를 했다. 중국, 러시아 등 코로나 백신을 자체 개발하는 나라를 제외하면 주요국은 대부분 선구매를 해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요국들은 화이자뿐만 아니라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존슨앤드존슨, 사노피 등 코로나 백신 개발을 하고 있는 제약사들과도 선구매 계약을 맺어 여러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정부는 “코백스(국제 백신 공동구매 프로젝트)를 통해 1000만명분, 개별 제약기업들을 통해 2000만명분을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화이자 백신으로 접종한다고 가정하면 6000만회분이 필요하다. 영국이 선구매한 물량의 2배에 달한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도 “우리는 화이자 선구매를 못 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개별 기업과 협상 과정은 구체적으로 상세히 밝히기는 곤란한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독자 개발 백신이 대안이 될 수도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는 “(국내 업체의 백신 개발을) 끝까지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국내 업계에서 가장 속도를 내고 있는 제넥신도 임상 1상을 끝내지 못한 상황이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전병율 차의과대 교수는 “선구매한 국가들이 부러울 뿐”이라며 “코로나 극복에 필수적이고, 국민의 일상을 되찾아주는 데 필요한 백신 선구매를 왜 망설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성, 효능을 다 확인한 다음에 구매하려면 물량이나 가격을 맞추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의료계 일부에서는 “화이자 이외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도 최종 단계인 3상의 막바지에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EU가 구입 선택권을 행사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화이자가 생산 공장을 확장할 가능성도 있어 물량 부족이 생기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하고 있다.
정부는 국내 기업인 SK바이오사이언스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미국 노바백스의 코로나 백신을 위탁 생산하기로 했기 때문에 국내서 생산한 물량 일부를 내수용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있다. 구매 계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선구매 물량을 해소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11일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전날 발생한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146명이라고 밝혔다. 4일 연속 세 자릿수를 기록했다. 전국에서 소규모 집단 감염이 이어지고 있다. 강원 원주시 의료기기 판매업소에선 지난 6일 직원이 첫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방문자, 가족, 지인 등이 추가 감염되면서 확진자가 23명으로 늘었다. 충남 천안 콜센터 집단 감염은 41명으로 커졌다. 경기 포천시 한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집단 감염으로 총 20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김민철 선임기자, 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