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1078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하는 등 코로나 확산세가 거세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와 여당이 ‘내년 3월 백신 접종'을 사실상 압박하면서 과거 ‘백신은 속도보다 안전이 최우선'이란 방역 당국 입장도 백신 승인을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 여부 상관없이 한국 절차 따라 진행하겠다'는 식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전문가 사이에선 “백신 도입 절차나 안전성을 고려하면 정부가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청 압박에 정부도 ‘3월 접종’ 가세
정부는 지난 8일 해외에서 개발 중인 백신 4400만명분을 내년 상반기부터 단계적으로 국내에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중 선구매 계약이 완료된 백신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1000만명분뿐이다. 그런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최근 3상 임상시험에서 투약 용량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등의 문제가 발견되면서 미 FDA 승인이 늦어지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을 공동 개발 중인 옥스퍼드대 제너연구소 책임자 에이드리언 힐 박사는 9일 “(FDA가 요구하는) 임상시험이 끝나길 기다리면 내년 중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FDA의 승인이 늦어지며 국내 도입이 늦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방역 당국은 “FDA 승인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 결정에 따르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15일 정례 브리핑에서 “백신 도입은 미 FDA 승인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나라의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며 “FDA는 미국 기관이고 우리나라는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결정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말했다.
과거 ‘백신은 속도보다 안전’이라는 입장과 달라진 것이다. 여기엔 청와대와 여당이 앞장서서 ‘내년 3월 접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정부는 4400만명분의 백신 물량을 확보했고, 내년 2~3월이면 초기 물량이 들어와 접종을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드디어 백신과 치료제로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13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 치료제 사용은 내년 1월 하순 이전, 백신 접종은 3월 이전에 시작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섣부른 독자 승인 의문”
하지만 전문가들은 “백신 도입 절차나 안전성을 고려하면 섣부른 태도”라고 지적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승인을 우리 식약처가 결정하는 것은 맞지만, 식약처 역시 백신 승인을 검토할 때 미 FDA의 승인 여부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FDA 승인 전에는 식약처가 보수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커 정부 주장대로 2~3월에 들여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미 FDA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도 절차에 따라 화이자 백신에 대한 승인 절차를 밟았고 그 과정을 생중계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키웠다”며 “정부가 자꾸 ‘3월 이전 접종’이라는 입장을 고수할 경우, 식약처가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아스트라제제네카 접종을 독자적으로 시작할 경우, 영국·캐나다 등 다른 나라에서 먼저 사용 승인이 이뤄진 화이자나 곧 사용 승인이 이뤄질 모더나 백신과 달리 해외에서 접종 후 이상 반응을 파악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외국에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백신은 국민 입장에선 걱정될 수밖에 없다”며 “아스트라제네카를 굳이 먼저 승인하겠다는 것은 결국 다른 백신은 확보가 늦어지며 울며 겨자 먹기로 내리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국민 56% “안전성 없는 접종 두렵다”
한편 코로나 백신 접종과 관련해 국민들은 ‘빠른 접종’보다는 ‘안전한 접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이 전국 성인 11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코로나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5.8%는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채 성급히 접종이 추진되는 것이 두렵다’고 답했으며, ‘백신 접종이 다른 나라들보다 늦게 이뤄질 것이 두렵다’는 비율은 이보다 낮은 35.7%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