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프리카 친구들! 배고플 거야. 내가 집에 있는 오뎅 주고, 동생 하담이는 붕어빵.”
지난 2012년 11월의 어느 겨울날 오강민(40)·하현진(38)씨 부부의 세 살배기 딸 하윤이는 전날 제주 서귀포시 아프리카 박물관을 다녀와 그림일기를 그리며 이같이 말했다. 박물관 전시실에는 배고픈 아프리카 또래 친구들의 모습이 없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살 때 함께 받은 구호 단체 홍보 책자를 하윤이가 이날 들고 다녔을 뿐이다.
하윤이는 이날부터 하씨가 잊어버릴 때쯤이면 “나도 아프리카 친구들 돕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씨는 “기특하지만, 지금 하윤이가 돕는다고 해도 결국 엄마·아빠가 버는 돈으로 돕는 거야”라며 타일렀다. 어른이 돼서 스스로 돈을 벌게 되면 아프리카 아이들을 도와주라고 했다. 하씨는 “당시 일기장을 찾아보면 하윤이가 1년 넘게 우리를 졸랐더라”고 말했다.
결국 2014년 새해 초 이들 부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 하윤이 이름으로 월 3만원씩 해외 아동 결연을 시작했다. 하윤이는 하씨에게 “케냐에 사는 여동생이면 좋겠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박물관에서 만난 전통 공연단 사람들이 케냐인이었다.
하씨는 하윤이에게 “후원 시작하면 그래도 10분의 1은 스스로 내야 한다”고 조건을 내놨다. 하윤이는 월 3000원씩 직접 내겠다고 약속했다. 다섯 살 하윤이는 집 안으로 들어오는 길에 스스로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면 500원, 놀고 난 장난감을 장난감 통에 넣으면 500원을 받는 등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매달 약속을 지켜나갔다. 여덟 살엔 집 근처로 심부름 다녀오면서 받은 용돈으로, 열한 살이 된 최근엔 학원에서 문제집 하나를 다 풀면 주는 격려금으로 어떻게든 3000원을 마련했다.
하윤이와 결연을 맺은 친구는 케냐 수도 나이로비 인근에 사는 펠리스터 무타누 음불라라는 당시 네 살 어린이였다. 하윤이보다 딱 한 살 어렸다. 다섯 살 하윤이는 펠리스터에게 처음 보내는 손편지에 삐뚤빼뚤한 영어 글씨로 “움불라에게. 사랑해. 나는 다섯 살이고, 내 이름은 오하윤이야”라고 적었다. 그는 “나에겐 너랑 동갑내기인 어린 ‘동생’(younger bother)이 있어”라고 편지를 끝맺었다. 하씨는 그날의 일기를 기록하며 “펠리스터 사진을 받고 나서 들뜬 딸내미를 보니 더 일찍 해주지 못한 게 미안해진다”며 “벌써부터 호기심이 폭발해서 펠리스터는 어떻게 사는지, 펠리스터도 물 길으러 가야 되는지 이것저것 묻는다”고 썼다.
하윤이와 펠리스터는 7년 가까이 3개월에 한 번씩 편지를 주고받고 있다. 어느덧 열한 살이 된 하윤이의 영어 실력도, 펠리스터의 영어 실력도 달라졌다. 펠리스터는 이전까지 지인이나 현지 봉사자의 도움을 받아야 영어로 된 편지를 쓸 수 있었다. 하윤이는 편지를 보낼 때마다 색종이를 접어 동봉하거나, 본인이 좋아하는 스티커 꾸러미를 보내기도 했다. 펠리스터는 지난해 직접 쓴 영어 편지에서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고 영어와 스와힐리어, 사회, 과학 등을 배우고 있어. 나는 (언니가 보내준) 스티커들이 다 좋아”라고 답했다.
하윤이는 해외 봉사에 참여할 수 있는 12세가 되면 케냐로 가 펠리스터를 직접 만나는 꿈을 가져왔다. 출입국이 까다롭지 않았던 지난 3월에도 펠리스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전 세계가 코로나와 싸우고 있어서 난 학교에도 가지 못해. 그렇지만 나는 네가 있는 케냐로 가고 싶고 너와 만나는 장면을 떠올리고 있어”라고 적었다. 하지만 불과 이틀 후 방역 당국은 모든 해외 입국자에게 14일 자가 격리 등을 의무화하면서 사실상 하늘길이 닫히게 됐다. 하윤이는 다시 하늘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씨는 “하윤이가 코로나 때문에 펠리스터를 금방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씨는 “저희 부부의 의지가 아니라 100% 하윤이 의지로 시작한 기부였지만 이를 통해 펠리스터와 진한 우정도 나누고, 기대했던 것 이상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며 “하윤이가 스스로 ‘너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넉넉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걸 깨닫고 늘 타인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