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 전 코로나19에 감염된 80대 환자가 중환자 병원 이송을 기다리다 끝내 숨졌다. 이 환자는 경기도 부천 요양병원에서 확진 상태로 대기하다가 나흘 전부터 폐렴이 악화해 중환자 치료 병원으로 옮겨야 했으나, 병상을 배정받지 못하고 기다리다 유명을 달리했다. 이 요양병원 70대 남성 2명도 지난 13∼14일 병상을 배정받지 못한 채 병동을 통째로 격리 중인 상태서 병세가 악화해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이처럼 제때 적절한 병상을 배정받지 못한 확진자가 자택서 대기하다가 또는 요양병원서 기다리다 치료를 못 받고 숨진 경우가 이달에만 6건이다. 올 2~3월 대구 사태 때는 2명이었다. 정부 계획대로 연말까지 병상이 대폭 늘더라도 그때까지 확진자들로선 ‘죽음의 계곡’을 건너야 할 형편에 처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18일 기준 서울 580명, 경기도 251명, 인천 10명 등 841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확진 판정 후 24시간 이상 입원 대기 중인 경우는 496명, 이틀 이상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315명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4일 “하루 이상 집에서 대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허언이 됐다.
방역 당국은 “17일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신규 확진자는 1062명”이라고 했다. 국내 지역 감염이 1036명, 해외 유입 사례가 26명이다. 15~16일에 이어 사흘 연속으로 하루 1000명 넘는 신규 환자가 추가된 것이다. 사망자는 11명 늘어 누적 645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14일부터 4일 연속 두 자릿수 사망자가 발생하며 전날에는 하루 역대 최다 사망자(22명)가 발생하기도 했다. 산소 치료 등을 받아야 하는 위·중증 환자는 246명으로 4명 추가됐다. 지난 12일부터 7일 연속 역대 최대치를 고쳐 쓰고 있다.
수도권 중환자가 즉시 입원 가능한 병상은 4개뿐이다. 서울은 코로나 중증 환자 전담 치료 병상을 지난 16일보다 6개 더 확보했지만, 그만큼 입원 환자가 빨리 늘면서 총 86개 중 1개만 남게 됐다. 인천도 전담 병상은 1개뿐이다. 의료계에선 “중환자실서 사망자가 나와야 그 빈자리에 한 명이 들어가는 극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중증환자 246명 역대 최다… 서울 중환자 병실은 1개 남아
50대 중반 남성 코로나 확진자는 폐렴 상태가 나빠져 경기도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 왔다가 사흘째 응급실에 머물러 있다. 오른쪽 폐에 폐렴이 심하게 생겼지만, 중환자실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감염자용 음압 병상이 꽉 찼기 때문이다. 18일 이 환자는 계속 병세가 악화돼 집중 산소 치료와 인공호흡기까지 동원해야 할 상황까지 왔다. 그런데도 응급실에서 최소 치료만 받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동부의 한 대학병원에는 코로나 중환자가 응급실에 5일간 대기하다 서울에 자리가 하나 났다고 해서 겨우 옮겨갔다. 중환자 병상이 대기로 막혀 있으니, 중등도 환자가 입원에서 밀리고, 경증 환자는 병원에 오지도 못하고 자택서 대기하는 순차적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에서도 지난 15일 60대 남성이 사흘간 코로나 병상 배정을 기다리다가 사망했다. 병상 대기 중 사망으로는 서울의 첫 사례였다. 담당 구청에선 확진 판정과 동시에 이 남성의 병상을 신청했지만, 서울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라 배정이 늦어졌다.
이런 상황을 방치할 경우 걷잡기 어려운 의료 공백 사태가 닥칠 수 있다. 의료 전문가들은 “코로나 의료 체계에 심폐소생술이 필요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병원을 통째로 코로나 전담으로 써야
지난 2~3월 대구서 코로나 감염자가 쏟아질 때 마침 새 병원으로의 이전으로 비어 있던 대구동산병원을 통째로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쓰면서 중환자 진료에 숨통이 트였다. 이 방식을 서울과 수도권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정부가 민간 대학병원에 돌아다니면서 코로나 중환자 병상을 내놓으라는 식이다. 하지만 그 방식으로는 현재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이왕준 대한병원협회 코로나 긴급대응위원회 실무단장은 “대학병원 중환자실은 대형 룸에 병상이 줄줄이 들어간 구조여서 감염 전파 때문에 일부를 떼서 코로나 진료를 볼 수 없다”며 “이미 일반 환자로 중환자실이 90% 이상 차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 전담으로 뺄 수 있는 병상이 몇 개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현재 경기도 일산의 건강보험공단병원은 병동을 통째로 비우고 코로나 전담 병동으로 바꾸고 있다. 그래도 여기서 나올 중환자 병상은 10여 개밖에 안된다. 이런 방식으로는 병상 절대 부족 현상을 타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환자 처치 시설과 설비를 갖춘 서울의료원과 적십자병원 등을 중증 전담 병원으로 즉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환자 진료 의료진, 연합군 형성해야
중환자 진료에는 전문적인 기술과 경험을 갖춘 의사, 간호사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자원 봉사 형태로 의료진을 투입하는 식으로는 중환자 진료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이에 중증 환자 진료를 전담한 의료진은 주요 대학병원들이 연합군을 형성해야 한다. 이들에게 중증 전담 병원이나 병동별로 전담시키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서울의료원 전체를 중환자 전담으로 전환하면 병동이나 층별로 서울대·연세대·고려대·가톨릭대병원 또는 서울아산·삼성서울 등 대형병원이 의료진을 투입해 전담시키는 방식이다. 박종훈 고려대병원 원장은 “각 대학병원 중환자실을 쪼개는 방식으로는 현재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며 “신속히 중증 전담 병원을 만들어 주요 대학병원 의료진을 파견 배치하는 형태로 가야 코로나 사망자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선보상, 코로나 재난 수가를 만들어라
상당수 수도권 병원들이 코로나 진료에 병상 내놓기를 꺼리는 이유가 코로나 환자 진료로 인한 피해 보상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피해 보상책이 나와야 한다. 200여 병상의 경기도 한 재활병원 원장은 “병상당 피해 보상액을 일정 부분 선지급 형태로 주고, 나머지는 후지급 보상으로 하면 병원 전체를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바꿀 텐데, 현재는 섣불리 나섰다가 병원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진 경영진이 많다”고 말했다.
일본처럼 코로나 감염자 진료는 기존 의료수가의 4~5배로 산정하는 이른바 ‘재난수가’를 도입하면 많은 병원이 코로나 진료에 나설 것이라는 제안이 나온다. 민간 대학병원으로는 처음 코로나 중환자 병상을 만들기로 한 신응진 부천순천향대병원 원장은 “코로나 낙인 피해, 전파 차단을 위한 감염 관리 등 코로나 진료에 의료진이 4~5배 더 들어간다”며 “지금의 긴박한 상황에서는 지원 체계를 단순화하여 가능한 한 많은 병원이 참여토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