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보건 당국이 코로나 백신의 수급 부족을 해결하고 접종자 수를 단기간에 대폭 늘리고자 백신 접종량을 정량의 절반으로 줄여 맞히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3일(현지 시각) 현재 미국의 코로나 사망자가 35만명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 확산세가 계속되고 있지만 백신 보급 속도는 당초 목표치의 20% 정도로 그치고 있다. 바이러스와의 속도전에서 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자 파격적 대책을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영국에선 다른 백신을 1·2차 접종하는 ‘교차 접종’ 아이디어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지·국내 전문가들은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美, 모더나 백신 ‘반 토막’ 접종 고려
미 보건 당국이 1인분을 두 명에게 맞히는 ‘반 토막 접종’을 검토하는 대상은 미 제약사 모더나의 백신이다. 한국도 5월부터 이 백신 2000만명분을 공급받는다. 백악관의 백신 개발 프로그램을 이끄는 몬세프 슬라위 최고책임자는 이날 CBS 인터뷰에서 “모더나의 임상 시험에서 50㎍(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1g) 용량의 백신을 2회 접종하거나, 100㎍ 백신을 2회 접종한 사람이나 동일한 면역 반응을 보였다”며 “‘반 토막 접종'을 두고 식품의약국(FDA), 모더나와 함께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반 토막 접종’ 아이디어가 과학적 데이터상으론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고 평가가 나오면서도, 실제 효과를 장담하지는 못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코넬대의 백신 전문가 존 무어 박사는 “백신 용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게 모든 백신에서 효과를 내는 건 아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권하고 싶지 않다”고 NYT에 밝혔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당장 절반 용량을 접종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라면서도 “임상 결과에서 효과가 있다고 나와야 해볼 만하다”고 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모더나 절반 접종에 대한 결론을 내려면 3상 임상 시험을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英, 백신 ‘교차 접종’ 아이디어까지
영국 보건 당국은 1·2회 차 접종 간격을 최대 12주로 대폭 확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지금은 1회 차 접종 뒤 3~4주 뒤에 2회 차를 접종하는데 이를 12주 뒤로 미루면 그동안 더 많은 이에게 접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1회 접종’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대부분 백신이 2회 접종이 원칙이지만, 1회만 접종해도 면역력이 어느 정도 생기는 만큼 2회 접종을 생략하고 보급 대상을 넓히자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학협회는 “접종 간격이 커지면 1회 차 백신의 효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면역 지속 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국에선 1차에 접종한 백신과 다른 종류의 백신을 2차에서 맞아도 된다는 ‘교차 접종’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승인된 코로나 백신은) 상호 교환이 불가능하다”며 “혼합된 제품의 안전성과 효능은 평가되지 않았고, 1·2회 모두 같은 제품으로 접종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모험’ ‘비과학적’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바이러스벡터 방식의 아스트라제네카와 세포 내에서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메신저 RNA(mRNA)를 기반으로 한 백신인 화이자·모더나의 교차 접종은 임상 시험에서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환종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다른 질병의 경우 프라임(마중물) 백신과 후속 부스터(부양책) 백신을 아예 다른 종류로 접종해 효과를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는 사례도 있지만, 검증이 안 된 상태에서 교차 접종을 하는 것은 모험”이라고 했다.
◇정세균 총리 “화이자 2월 조기 도입”, 정은경 청장은 “일정 확정 안 돼”
한편 정세균 국무총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화이자 계약 물량 중 일부를 오는 2월부터 앞당겨 들어오는 프로젝트 진행 중”이라고 했다. 정부는 당초 화이자 백신을 올 3분기 도입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화이자 백신을 조기 공급 받기 위해 협의 중”이라면서도 “도입 일정은 확정된 것이 없다”고 했다. 앞서 정 청장은 지난해 12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2월부터 백신 접종”을 말한 데 대해 “백신 생산량이나 유통 문제 등 불확실성이 상당수 있다”고 했지만 이날 “2월 말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정 총리가 말한 화이자 백신의 ‘2월 조기 도입’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