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대구 동구 대구·경북간호사회 강당에서 거점전담병원, 감염병 전담병원, 중증환자치료병상, 생활치료센터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실습을 하고 있다. 2021.02.18. 뉴시스

코로나 백신 접종 개시(26일)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국민의 절반가량이 ‘내 순서가 와도 접종을 미루겠다'고 답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부가 목표로 삼은 ’11월 집단면역 형성’을 위해선 적어도 올 9월까지 대다수 국민이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빠른 시일 안에 높은 접종률을 달성하는 게 중요한 상황에서, 백신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집단면역 형성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며칠 만에 달라진 ‘백신 민심'

한국사회여론연구소는 지난 19~20일 성인 1020명을 대상으로 한 백신 접종 조사 결과를 22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순서가 와도 접종을 연기하고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45.7%로 ‘순서가 오면 바로 접종하겠다'(45.8%)와 엇비슷했다. ‘백신을 맞지 않겠다’(5.1%)는 응답까지 고려하면 정부가 세운 백신 접종 계획에 부정적인 반응이 50.8%로 절반이 넘었다. 정부의 백신 도입과 접종 체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41%에 달했다.

이런 조사 결과는 16~18일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와는 다르다. 갤럽 조사에서는 ‘백신이 도입되면 접종을 받을 것인가’란 질문에 응답자의 71%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접종 의향이 없다’는 비율은 19%에 그쳤다. 질병관리청이 최우선 접종 대상인 전국 요양병원·요양시설 입소자와 종사자, 코로나 환자 치료 병원 종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20일 발표)에서도 ‘접종하겠다’는 응답이 93.8%였다. 그런데 이런 기류가 불과 며칠 새 확 달라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안전성과 예방 효과 등이 검증된 화이자 백신 등의 국내 도입 일정이 늦춰지거나 불확실한 점 그리고 정부의 소통 부족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정재훈 가천대 교수는 “당초 2월 초로 예정됐던 화이자 백신의 국내 도입 시기가 늦어지면서 백신 효능과는 상관없이 정부의 백신 접종 계획에 대한 논란들이 발생했다”며 “이러한 점이 국민들의 신뢰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김윤 서울대 교수도 “정부가 발표한 백신 접종 계획은 몇 분기에 어떤 백신이 들어오는지 정도만 알 수 있는 대략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대다수 국민들은 ‘내가 언제 어떤 백신을 맞게 되는지’가 가장 궁금한데 이에 대한 정보는 사실상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역 당국도 비상이 걸린 분위기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날 “집단면역을 이루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변수는 접종률인데 이는 정부의 힘만으로는 어렵다”며 “정부와 의료계, 전문가, 국민들이 신뢰와 소통을 기반으로 접종률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신뢰 높일 수 있게 정부가 나서야”

전문가들 사이에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65세 이상 고령층 접종 여부를 놓고 정부에서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 신뢰를 떨어뜨린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0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18세 이상 누구나 맞을 수 있도록 품목 허가를 하면서도 ’65세 이상 접종은 신중 검토'하고 실제 결정은 현장 의사들의 판단으로 돌렸다. 이후 질병청은 65세 미만만 우선 접종 대상으로 확정했다. 김우주 고려대 교수는 “아스트라제네카의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접종에 대한 유보적인 태도가 증가한 것”이라며 “26일부터 접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백신에 대한 신뢰가 점차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욱 고려대 교수는 “정부가 연령대별, 남녀별 백신 접종에 대한 신뢰도를 분석해 각 계층에 맞는 소통 전략을 짜야 한다”고 했다.

백신에 대한 불신은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 “예방 효능이 62~70%인 아스트라제네카 대신 95%인 화이자 백신을 맞으려는 영국인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영국은 개인에게 백신 선택권은 없으나, 의료계 종사자 중 일부는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어디서 어떤 백신이 접종되는지 알려줄 수 있다”며 “접종 예약을 잡은 뒤 자신이 원하는 백신이 아니면 취소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