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하나 둘! 힘들어도 화면 보고 계속해야 돼!”(엄마) “아휴 힘들어! 다리 아프단 말이에요~”(딸)
지난 23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한 아파트 거실. 주부 장모(38)씨가 두툼하게 세 겹이나 매트를 깔아놓고 초등학생 아들(10)과 유치원생 딸(6)과 함께 ‘스쿼트’ 자세를 잡았다. 1년 전보다 아들 몸무게는 8㎏, 장씨 본인은 6㎏ 늘었다. 체중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나자 보건소에서 만든 ‘비만 제로’ 운동 동영상을 구해 근력 운동에 나선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살이 찐 건 장씨 가족만의 일이 아니다. 본지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 수검 결과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30·40대 남성 비만율은 각각 54.03%, 52.5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른 연령대들도 모두 1년 전보다 비만율이 치솟았다. 본지는 비만 전문가 10여 명에게 ‘코로나 시대 비만율’이 왜 높아진 것인지 물었다. ①신체 활동량 감소 ②나쁜 식습관 ③우울감·스트레스 증가 ④수면의 질과 양 악화 등 요인이 꼽혔다.
◇단·짠 배달 음식에, 소파에 누워 유튜브만
우선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신체 활동이 뚝 떨어진 것이 비만율 상승의 직격탄이 됐다. 장씨는 “1년 가까이 ‘집콕’ 하며 아파트 체육시설에서 매일 1~2시간 하던 운동을 중단했다”면서 “아들은 하교 뒤 방과 후 활동으로 하던 태권도·축구도 못 하게 됐다”고 했다. 최근 취업 포털 인크루트 설문(성인 981명 대상)에 따르면 운동 시간은 코로나 이전 4.9시간에서 1.9시간으로 3시간이나 줄었다. 체중은 결국 ‘인풋’(음식 섭취량)과 ‘아웃풋’(운동 등 에너지 소모)의 균형 싸움으로 나타난 결과인데, 코로나 장기화로 이 균형이 심각하게 깨졌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여기에 잦은 배달 음식, 간편식 섭취로 식습관은 더 나빠졌다. 김대중 아주대 의대 교수는 “흔히 배달 음식을 집에서 먹어 ‘집밥’이라 착각하는데, 배달 음식은 ‘집에서 먹는 외식’”이라며 “배달 음식은 칼로리가 대체로 높고 과잉 섭취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또 “보통 배달 앱으로 음식 시킬 때 제일 상단 인기 메뉴에 손이 가기 마련인데, 이런 음식은 대체로 달거나 짜면서 칼로리가 높은 것이 특징”(김은미 강북삼성병원 영양사)이라는 분석도 있다.
◇우울감과 수면 부족도 비만 불러
코로나 사태로 더 커진 취업난과 실업, 재택근무, 등교 제한 등이 우울감·스트레스를 키웠다는 분석도 있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가 작년 10월 19~34세 청년 2011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57.7%가 중증 또는 약한 우울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재혁 명지병원 교수는 “우울감과 스트레스는 이른바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불리는 코르티솔 분비를 늘리고, 이 코르티솔 혈중 농도가 높아지면 식욕이 증가하고 지방을 축적하게 된다”고 했다.
코로나 비만의 또다른 위험 요소는 수면이다. 잠자는 시간이 짧아지면 식욕 조절 호르몬인 렙틴 분비가 줄고, 식욕 촉진 호르몬인 그렐린은 반대로 분비가 늘어나게 된다. 덜 자면 그만큼 음식을 많이 먹게 되고 살찌기 쉬워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재택근무·온라인 학습 등으로 생활 리듬이 깨져 늦게까지 게임하고 늦잠 자는 일이 많아지면서 코로나 비만이 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만은 각종 성인병을 유발할 뿐 아니라 코로나 감염 시 환자 상태를 더 위중하게 할 수 있다. 영국 공중보건청은 작년 7월 보고서에서 비만이 코로나 감염에 따른 사망 위험을 40% 높인다고 분석했다. 코로나가 비만을 부르고 비만이 다시 코로나 사망 확률을 높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이처럼 코로나 여파로 ‘비만 팬데믹’이 우려되자 대한비만학회·대한당뇨병학회·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 등 관련 학회 10곳은 3월 2일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학회들은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신체활동 감소와 불규칙한 생활 습관이 초래돼 비만과 대사증후군이 유발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며 “특히 ‘침묵의 살인자’라고도 불리는 만성질환을 가진 분들은 코로나라고 의료기관 방문을 미루다 기존 병세를 악화시킬 수 있으니 정기적인 관리가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