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잽, 잽! 하나 둘! 하나 둘!”
지난달 25일 오후 3시쯤 경기 구리시 실내 체육관 ‘파이팅 스테이션’의 키즈부 복싱 수업. 초등학생·중학생 8명이 우렁차게 구호를 붙이며 글러브 낀 주먹을 내질렀다. 그런데 가만 보니 학생 중 절반은 뱃살이 불룩했다. 초등학교 6학년 이모(12)군은 “코로나로 학교 거의 안 가니까 1년 동안 몸무게가 75㎏까지 늘어 스트레스”라며 “빨리 걸으면 숨차고 불편해 복싱 학원에 등록했다”고 했다.
코로나 ‘비만 팬데믹’은 일반 성인도 살찌웠지만, 특히 학교를 못 가고 성인보다 자제력이 약한 어린이·청소년 몸집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키 5㎝ 클 때, 몸무게 15㎏ 늘어
경기도 사는 김민수(가명·10)군 사례는 코로나가 성장기 어린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보여준다. 코로나 유행 전인 2019년 10월, 김군의 키는 140.0㎝, 몸무게는 45.7㎏으로 다소 통통한 정도(체질량지수·BMI 23.3)였다. 그러나 코로나로 등교를 못 하고 운동 학원도 못 나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실내에 앉아 보내는 시간이 하루 평균 3시간(2→5시간) 늘고, 휴대폰 사용은 2시간(1→3시간) 늘었다. 맞벌이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식사는 라면이나 냉동 피자로 자주 해결하곤 했다. 특히 밥 먹고 곧장 누워 엎드려 핸드폰 보는 일이 습관이 됐다. 이렇게 1년쯤 지나자 키는 5㎝(145.3㎝) 컸는데, 몸무게는 60.4㎏으로 15㎏쯤 불었다. 확연한 비만(BMI 28.6) 체중이 된 것. 허리둘레가 24.4㎝(65.6→90.0㎝) 증가했고, MRI<사진>로 관찰하니 내장 지방과 피하지방이 두툼했다.
그런데 이는 김군만의 상황이 아니다. 가톨릭대 소아과학교실 안문배 교수팀이 서울성모병원 소아과 성장클리닉에 등록된 4~14세 어린이 226명의 BMI 등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 이전(2019년 3월~2020년 2월)엔 과체중·비만이던 아이가 23.9%였는데, 코로나를 겪으며(2020년 3~8월) 31.4%로 7.5%포인트 늘었다. 햇빛으로 합성되는 비타민D 수치는 코로나 이전보다 21%(23.8→18.9㎎/dL) 감소했다.
뚱뚱했던 아이들은 더 뚱뚱해졌다. 질병관리청이 주관하는 비만 아이 관리 프로그램 ‘아이캔(ICAAN) 프로젝트’에 참가한 97명의 변화는 확연했다. 이 연구를 수행한 박경희 한림의대 가정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코로나 유행 이전(2019년 9월~2020년 1월)에 기본 검사할 땐 참가자 중 29.9%만 ‘고도 비만’이었는데, 코로나 유행 이후(2020년 6~8월), 이 비율이 41.2%로 10.3%포인트 올랐다. 주당 운동 횟수(4.27→3.3회)가 줄고, 하루 앉아있는 시간(6시간 51분→8시간 2분)은 길어지며, TV나 핸드폰을 만지는 미디어 사용시간이 늘어(2시간 27분→3시간 25분) 생긴 변화다. 박 교수는 “어린이 비만은 혈압 상승은 물론 지방간이나 혈당 이상을 가져오고 (소아)당뇨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 악화, 팬데믹 끝나도 영향
코로나로 인한 소아·청소년 비만은 팬데믹이 진정되더라도 장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어렸을 때 길들여진 식습관·운동습관은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립보건연구원이 2008년 만 10세 아동 369명을 8년간 추적 조사했더니, 2008년 비만이거나 과체중인 아동 71.9%는 4년 뒤에도 비만이었고, 68.8%는 8년 뒤에도 비만이었다. 김대중 아주대 의대 교수는 “소아·청소년기 비만은 다시 정상 체중으로 되돌리기 쉽지 않은 데다, 중년기 이후 찾아오는 지방간·당뇨 등 대사 장애를 20~30대 젊을 때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