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백신 맞는 104세 어르신 - 만 75세 이상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104세 어르신이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도봉구에 사는 이모(48)씨는 최근 자정 무렵 폐렴으로 열이 40도 가까이 오르고 심한 오한 증상을 겪었다. 집 근처 대형 병원을 갔지만, 응급실에서 “지금은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고열 환자는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 병상에 머물러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이후 발열 환자가 늘어 남는 격리 병상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이씨 아내가 다른 병원 다섯 곳을 수소문한 끝에 25㎞ 떨어진 양천구 병원까지 가서야 겨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1일부터 전국 46개 예방접종센터에서 75세 이상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이런 응급실 부족 현상이 더 심해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 확산 이후 일반 고열 환자들이 응급실에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 환자들이 응급실에 몰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응급실 찾아 헤매는 환자들

현재 하루 코로나 백신 접종 가능 인원은 센터당 600명. 하루 2만5000여 명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가 7월까지 접종센터를 254개로 늘릴 계획이라 이러면 하루 15만명까지 백신 주사를 맞을 수 있다. 여기에 오는 6월부터 동네 병·의원 등에서 백신 접종을 본격화하면 전체 접종 인원은 하루 20만~25만명까지 불어난다. 현재 국내 백신 접종자 수(88만명)는 전체 인구(5183만명) 대비 1.7% 수준이다.

의료계가 걱정하는 건 이 대목이다. 접종 인원이 늘면서 이상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는 사람이 급증하면 지금 병상 인프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씨처럼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격리 병상이 없어 멀리 떨어진 다른 병원까지 원정을 가야 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현재 38.5도 이상 발열이나 기침, 호흡 곤란 등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코로나 검사부터 받아야 한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격리 병상에서 치료받도록 한다. 문제는 열이 나서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격리 병상 수용 규모를 훨씬 넘어서면서, 상당수 환자가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기 파주시에 사는 박모(55)씨도 2월 말 장염으로 열이 39도까지 오르자 가까운 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격리 병상이 없어 결국 차로 40여 분 떨어진 고양시까지 가야 했다.

◇하루 응급실 환자 2500명 늘 수도

현재 전국 응급실 내 격리 병상은 821개. 대형 병원 1곳당 보통 10개 안팎이다. 서울대병원은 12개, 서울성모병원은 7개, 이대목동병원은 6개를 운영하고 있다. 이보다 규모가 작은 병원은 3~5개쯤이다. 송명제 가톨릭대 국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격리 병상이 5개뿐인데 하루에 보통 20~30명 안팎 발열 환자가 몰리고 있다”며 “최대한 빨리 코로나 검사를 마친다 해도 방문 환자의 절반은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담당자는 “정말 위중한 환자가 아니면 응급 조치만 하고 다른 병원으로 보낸다”고 했다.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된 후 접종 후 발열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는 사람은 더 많아졌다. 대한응급의학회에 따르면 2월 26일~3월 13일 사이 백신 접종 후 응급실을 찾은 사람은 1110명에 달한다. 이 중 80%는 단순 발열이었고, 중증 이상 반응은 24명(2.2%)이었다. 허탁 응급의학회 이사장은 “단순 발열만으로 응급실을 찾는 사람이 많아 정말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했다. 방역 당국은 ‘접종 후 48시간 이내 발열은 해열제를 먹고 응급실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응급실 이용 권고안'을 준비하고 있다.

응급의학회는 일반인 접종이 본격적으로 시작해 하루 접종 인원이 25만명까지 늘면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평소보다 하루 평균 1250~2500명(8.3~16.7%)가량 더 늘 것으로 전망한다. 코로나 유행 때는 음압 병상이 부족해 골머리를 앓았는데 백신 접종 후엔 격리 병상 부족으로 인한 응급실 과부하가 고민인 셈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이달 안으로 전국 응급실에 126억원을 투입해 격리 병상 286개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란 분석이 많다. 허탁 이사장은 “정부가 ‘접종 후 단순 발열만으론 응급실을 찾지 말라’고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