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서울에 있는 한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모(26)씨는 작년 말 처음으로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취업에 실패하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 친구와도 헤어져 우울감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용돈 벌이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지만 투자 종목은 반 토막 났다. 김씨는 “가뜩이나 좁았던 취업 문이 코로나 때문에 아예 닫혔다”라며 “남들은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데 나는 얼마 되지 않는 돈도 다 날려 희망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20~30대에 짙게 드리운 ‘코로나 블루’
코로나 사태가 1년 넘게 장기화하면서 우울감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다른 연령대보다 20~30대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젊은 연령대일수록 ‘코로나 블루(우울감)’를 심하게 앓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6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코로나 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전국 19~71세 성인 2110명을 대상으로 3월 29일부터 4월 12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진행했다.
‘희망이 없다’ ‘피곤하고 기운이 없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등의 설문을 통해 파악한 우울감 지수(총점 27점)는 전체 평균 5.7점으로, 2018년 실시된 지역사회 건강조사 결과인 2.3점의 2배 이상이었다. 특히 20대와 30대는 모두 평균 6.7점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30대는 코로나 사태 초기인 지난해 3월 조사 때에도 우울감 지수가 가장 높았다. 하지만 우울감이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던 20대는 지난 1년간 우울감 지수가 급등했다.
전 연령대에서 우울감 지수가 10점 이상인 ‘우울 위험군’ 비율은 22.8%로 지난해 이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3.8%) 대비 6배가량으로 증가했다. 우울 위험군 비율 역시 20대(30%)와 30대(30.5%)가 가장 높았다. 60대(14.4%)의 2배 이상이었다. 20대의 경우 이 비율이 작년 3월 13.3%로 가장 낮았지만 1년 만에 2배 이상이 됐다.
◇20~30대 5명 중 1명은 ‘자살 생각한 적 있다’
우울감이 심해지면서 자살을 고려해 본 사람도 급증하는 추세다. 조사에 참여한 사람 중 16.3%는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018년 4.7%의 약 3.5배 수준이며, 작년 3월(9.7%)과 비교해도 2배 가까이로 증가한 것이다. 이 비율 역시 젊은 세대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20대와 30대는 각각 22.5%, 21.9%로 높았고, 50대는 12.5%, 60대는 10%였다.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들의 코로나 우울감이 높은 이유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꼽는다.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코로나로 인해 불확실성이 극대화돼 젊은 세대일수록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은 “가장 움직임이 많고 활동적인 세대일수록 거리 두기 등 방역 조치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서 “정부가 조속히 젊은 세대들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은경 질병관리청창은 이날 브리핑에서 “코로나는 몇 번의 예방접종으로 근절 가능한 감염병이 아니라 관리하기 어렵다”며 “변이 바이러스 유행으로 발생이 지속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