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5일 경기도 수원 파장초등학교에서 교실 칠판에 각종 담배 광고물을 붙여 놓고 학생들의 반응을 조사하고 있다. 전자 담배 광고를 본 학생들은 “미래 시대 첨단 물건 같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포도 맛요!” “파파야 맛도 날 거 같아요!”

지난달 25일 경기도 수원시 파장초등학교 6학년 교실. 어떤 물건을 광고하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다섯 가지 비밀? 색다른 맛 랜덤 캡슐’이라고 쓰인 알록달록한 색감의 광고 이미지를 보여주며 학생들에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물었다. 그러자 어린 학생 20명이 과일 이름을 줄줄이 꺼냈다. 가향(加香) 담배 광고를 보고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과일을 연상한 것이다.

◇담배 광고 보고 과일 떠올리는 아이들

본지 취재팀과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금연기획팀은 이날 파장초에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담배 광고에 대한 간이 인식 조사를 벌였다. 국내 흡연 청소년이 처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는 연령은 평균 13.6세(2020년 기준). 금연 학자들은 “화려한 담배 광고 앞에 담배 회사의 ‘잠재적 단골손님’으로 통하는 청소년들이 현혹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최근 잇따라 출시되는 궐련형 전자담배는 어린 학생들이 담배에 손을 대는 ‘관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자담배는 몸에 해롭지 않은 것처럼 홍보하거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입혀 청소년들을 자극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본지 취재팀이 이날 학생들에게 특정 전자담배의 광고 이미지를 보여주며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묻자 “VR 게임요” “레이저 포인터요” “미래 시대 첨단 물건 같아요” 등 반응이 나왔다. 건강을 해치는 담배 제품을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 유혹하는 담배 광고

지난해 코로나 유행이 시작되고 지금껏 누적 사망자는 2018명(30일 0시 기준).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독하게 우리 폐를 공격하는 것이 담배다. 정금지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흡연자와 흡연 관련 사망자 예측’ 논문에 따르면 한 해 흡연 관련 질환으로 숨지는 사람은 6만1723명(2017년 기준)에 달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흡연으로 인한 직간접 사망자가 30배 많다는 뜻이다.

담배 광고는 이런 위험성을 가리고 있다. 이날 학생들에게 한 궐련형 전자담배 회사의 ‘일반 담배 대비 유해물질 배출 평균 약 95% 감소’라는 광고 문구를 보여준 뒤 느낌을 묻자, 20명 가운데 7명(35%)이 “실제로도 일반 담배보다 몸에 덜 해로울 것 같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궐련형 전자담배 등 신종 전자담배 역시 금연과 건강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질병관리청·국립보건연구원 등의 입장이다.

보건 당국이 지난 2019년 소매점주 64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담배 광고가 흡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한 응답자들은 가장 광고 영향이 큰 집단으로 ‘청소년 남자’(66.5%) ‘청년층 남자’(63.7%) ‘청년층 여자’(40.6%) 등을 꼽았다. 젊은 층일수록 담배 광고가 흡연 호기심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1일부터 ‘편의점 담배 광고 노출' 단속

본지 취재팀은 이날 수원 파장초 인근 500m 거리 내 편의점 5곳을 둘러봤다. 학생들이 등·하굣길에 쉽게 들를 수 있는 편의점 점포 한 곳당 평균 17개 정도 담배 광고가 붙어 있었다. 파장초 학생들도 “편의점에 들어가면 담뱃갑 흡연 폐해를 경고하는 그림보다 담배 광고가 훨씬 눈에 잘 띈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금연 학자들 사이에선 “우리나라 편의점은 ‘담배 광고 전시장’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복지부는 지난해 말 담배 업계 측으로부터 ‘담배 소매점 내부의 담배 광고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는 동의를 이끌어냈다. ‘통행로를 등지도록 담배 소매점 내부의 담배 광고물 위치를 조정한다' ‘담배 광고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창엔 반투명 시트지 등을 붙인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복지부는 1일부터 이 협의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담배 규제 정책 선진국인 캐나다와 영국, 호주, 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아예 편의점 내부에서도 담배를 전시하지 못하도록 담배 진열대를 가려두고 있다”면서 “편의점이 ‘담배 광고 전시장’이 되면 어린 청소년들도 유혹에 더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