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 상반기부터 추석 전까지 국민의 70%가 1차 접종을 마치고, 10월 말까지 70% 접종 완료를 달성한 뒤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다는 구상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4차 유행이 예상보다 길게 이어지고 추석 연휴가 다가오자 방역 조치를 일부 풀면서 ‘위드 코로나’ 예행 연습에 들어갔다. 국민들 방역 피로감을 고려한 셈이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추석 연휴를 계기로 사실상 ‘위드 코로나’ 실험을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확진자가 크게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한시적인 방역 완화 조치인 데다 접종 완료자 중심으로 이동을 풀어준 것이라 감염 확산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다소 성급했다는 우려도 나왔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해외에서 접종 완료율이 50%가 넘자 방역을 푼 뒤 확진자가 급증했던 선례가 있다”면서 “(이번 조치로) 추석 이후 확진자가 급증하면 (오히려) ’위드 코로나’로 전환이 더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자료=질병관리청

◇접종률 높은 나라 ‘위드 코로나’ 실험

백신 접종률이 높은 일부 선진국들은 이미 ‘위드 코로나’ 실험에 하나둘 나서고 있다. 덴마크는 지난 1일 코로나를 ‘사회적으로 중요한 질병’에서 일단 해제했다. 대부분 방역 규제도 중단했다. 백신 접종 증명서 없이도 자유롭게 식당을 출입할 수 있다. 지난여름부터 덴마크에서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덴마크 백신 접종 완료율은 72.4%. EU(유럽연합)에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영국도 지난 7월 19일 모든 방역 규제를 철폐했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지고 모임 인원 제한도 없어졌다. 하지만 최근 하루 신규 확진자가 3만명 선에 이르고 확진자 전체 규모는 119만명에 달하면서 방역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국민들은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영국 백신 접종 완료율은 62.9%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 상당수 유럽 국가들은 백신 접종 증명을 해야 식당·카페·극장 등에 입장할 수 있지만 그 외 방역 규정은 대부분 없앴다. 사적 모임 제약은 거의 없다. 영업시간 제한도 마찬가지. 언론들은 더 이상 하루 확진자 집계를 챙기지 않고 있다.

위드 코로나의 현장… 관중 꽉 들어찬 헝가리 축구장 - 2일(현지 시각)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푸스카스 아레나 경기장에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관중이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응원을 벌이고 있다.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헝가리의 백신 접종 완료율은 1일 기준으로 55.6%이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방역 조치를 완화하는 등‘위드 코로나(With-Corona)’실험에 나서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역시 ‘위드 코로나’를 신중하게 조금씩 도입하고 있다. 뉴욕주는 지난 6월 24일 코로나 비상사태를 종료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나 모임 인원 제한 규제를 업소 선택에 맡겼다. 이스라엘 역시 최근 사흘 연속 일일 확진자가 1만명을 넘었지만 방역을 강화하지 않고 대신 부스터샷 확대와 청소년 접종 확대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일본도 전 국민 대상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드는 10~11월부터 방역 규칙을 완화하기로 했다. 긴급사태가 발령된 지역에서도 음식점 주류 판매를 허용하고 영업시간 제한을 완화한다는 내용이다. 일본 정부는 백신 접종 완료와 코로나 음성이 확인된다면 회식 인원 제한(현재 4인 이하)도 풀어줄 예정이다. 일본 백신 접종 완료율은 46.9%(지난 1일 아워월드인데이터 기준)다.

이 국가들은 최근 델타 변이 영향으로 확진자가 많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치명률이 떨어진 상태다. ‘위드 코로나’ 실험을 감행하는 배경이다. 덴마크는 최근 한 달간 2만7000여 명이 확진됐지만 사망자는 34명. 치명률은 0.12%에 그친다. 영국은 0.3%, 일본은 0.12% 수준이다.

◇치명률 0.1%까지 떨어져야

정부는 “현 방역 수준을 유지하면서 접종자가 늘면 4차 유행은 이달 중순쯤 최대 2300여 명 수준으로 정점에 이른 뒤 서서히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달 말까지 전 국민의 70%인 3600만명 이상이 1차 접종을 완료하고 47%에 해당하는 2400만명이 접종을 완료할 것”이라고 했다.

3일 0시 기준 국내 인구 대비 1차 접종률은 57.7%, 접종 완료율은 32.7%에 머물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고령층의 90%, 전 국민의 80% 접종이 완료되면 위드 코로나 전환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한 점을 고려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전문가들은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려면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기준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중증 전환율은 확진자의 1% 이하, 월평균 치명률은 0.1%까지 떨어져야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국내 월별 치명률은 작년 12월 2.7%에서 올 4월 0.59%, 6월 0.24%로 내려갔다가 8월엔 0.36%를 기록했다.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위드 코로나’가 가능하려면 의료 체계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접종률만 봐선 안 된다”면서 ”현재 중증 전환율이 2% 수준임에도 의료 체계에 부담이 큰 걸 감안하면 최소 1%까지는 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욱 교수는 “접종률이 계속 늘어 현재 월평균 0.2~0.3%대인 치명률이 독감 치명률과 비슷한 0.1% 정도까지 낮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위드 코로나’로 전환에 앞서 방역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마상혁 경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그동안 정부가 국민적 합의 없이 방역 정책을 펼쳐 반감이 심했다”면서 “‘위드 코로나’를 하게 되면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 수도 있기 때문에 코로나로 인한 인명 피해와 방역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국민적·정치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