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이요? ‘에너자이저’처럼 지칠 줄 모르는 아이였어요. 놀이터에 가면 2~3시간씩 놀았고요. 그리고 또 얼마나 밝고 맑은 아이였는데요. 지나가는 강아지와 고양이한테 인사하고요, 나무한테까지 ‘안녕’하고 인사하던 그런 아이였지요.”
딸 소율(5)양을 하늘로 먼저 보낸 아버지 전기섭(43)씨는 2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담담하게 말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이날 “전양이 지난달 28일 장기 기증을 하고 ‘하늘의 별’이 됐다”고 밝혔다.
소율이는 ‘천사’ 같았다. 인형을 안고 환한 웃음을 짓는 모습에, 그네를 타면서 ‘까르르’ 웃는 모습에, 부모는 모든 걸 다 가진 느낌이었다고 했다. 모든 자식이 그렇겠지만, 소율이는 부모에게 정말 귀한 아이였다. 2013년 결혼했지만, 불임 판정까지 받아 “아이 낳기가 어렵겠다”던 부부 사이에서 3년 만에 선물처럼 자연 임신이 됐고, 소율이가 태어났다. “발레리나처럼 발레 따라 추는 걸 좋아해서 나중에 발레리나 시켜야겠다고 했지요.” 부모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그런 아이가 3명의 환자에게 심장과 좌우 신장을 주고 하늘로 떠난 건 2년 전 사고 때문이었다.
“키즈 카페에 데리고 갔다가, 붙어있던 샤워 시설에서 아이와 씻다가 탕에 빠진 거예요. 정신이 아득했어요.” 2019년 데리고 간 키즈 카페에서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해 소율이에게 심정지가 왔고, 20분 만에 아이 심장 박동은 되돌아왔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뇌 기능은 이미 많이 손상이 된 상태였다. 시련이었다. 그때부터 소율이의 투병 생활이 시작됐다. 아버지 전씨는 그래도 “다른 아이들처럼 벌떡 일어나 뛰어다닐 정도는 못 되더라도 어느 정도 회복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고 했다. 그러나 콧줄로 아이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상태가 더 나빠져 위에 직접 영양 공급을 위한 튜브를 연결하는 위루관 수술까지 예정했던 어느 날, 아이에게 또다시 심정지가 찾아왔다.
“병원에서 ‘소율이가 얼마 못 버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소율이와 함께 지내던 병원 환아들이 눈에 밟히더란 게 아버지 전씨 말이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너무 아픈 아이가 많아서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 했다.
“어떤 아버지가 귀하게 얻은 딸 마지막까지 심장 뛰도록 하고 싶어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생각을 좀 바꿔보니까, 우리 아이는 길어도 며칠 밖에 더 못 버틴다는데, 다른 아이 심장을 대신 뛰게 해주면 소율이 심장이 뛰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럼 저도 딸 심장 박동을 느낄 것만 같았어요.”
그렇게 전씨는 소율이의 심장 기증을 결심했다. 사실 전씨 가족의 시련은 연거푸 온 것이었다. 아내이자 소율이 엄마도 지난 6월 소세포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전씨는 아내와 딸을 24시간 돌보면서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중증 장애아 등을 위한 복지 서비스가 너무 열악해 답답했다는 게 전씨 말이다. “와이프도 돌보고 아이도 돌보느라 직장 생활도 못 하니까, 도움이 절실했는데, 그런 서비스를 안내해주는 곳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도 너무 어려웠어요.” 전씨는 “구청에서도 정부 복지 서비스 홈페이지 ‘복지로’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가 없어 장애아동 관련 네이버 카페에 들어가 수소문 해 겨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며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복지 서비스가 더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딸 아이 장기기증에 대해서 후회는 없다고 했다. “너무 소중한 자식이었어요. 기적처럼 태어난 아이였고, 한창 이쁠 나이에 사고가 난 거잖아요. 그래도 생각을 조금 바꿔 (장기 기증을 하니) 위안이 돼요. 이제 소율이가 죽은 게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요. 소율이 심장이 어디선가 계속 뛰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