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병원은 오늘(18일) 기준으로 코로나 중환자 병상 23개 중 19개가 찼어요. 우리는 중환자 병상 3개 정도는 정말 급한 환자를 위한 예비 병상으로 항상 비워두고 있어서, 사실상 꽉 찼다고 보면 됩니다. 오늘도 ‘중환자 3명이 입원 가능하냐’는 문의가 들어왔는데, 도저히 못 받아서 산모 환자 한 명만 겨우 받았어요.”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교수는 18일 인천에 있는 이 병원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수도권 병원에서 현장 진료 중인 A 의사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서 “응급실의 중증 코로나 환자가 병실 배정을 못 받고 대기하고 있다. 가득 찬 중환자실에는 사경을 오가는 환자들이 누워 있고…”라고 썼고, B 의사도 “현재 수도권에는 쓸 만한 중증 병상이 없는 상태”라며 “(중환자실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이 나와야 (다른 코로나 중환자가 들어갈 수 있는) 병상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중환자 병상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수도권 병상 대기 400명 넘어
이처럼 의료 현장에서는 긴박한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고 있지만 정작 방역 당국은 “지금 약간 입원이 지연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중”이라며 그렇게 소란을 떨 정도는 아니라는 반응이다. 정부 관계자는 “(중환자실 병상) 배정을 최대한 신속하게 해 (병상이 나기를 기다리는) 대기가 안 벌어지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정부에 대해 의료 현장에선 “현장 상황을 모르는 한가한 발언”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부 통계로도 수도권 병상 상황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병상이 없어서 만 하루 이상 병상 배정을 기다리는 사람은 이달 1일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 전환 시엔 ‘0명’이었으나 12일 116명으로 100명을 넘더니, 18일 0시 현재 423명까지 치솟았다. 이 가운데 367명은 병원 이송이 시급한 상태고 56명은 생활치료센터 배정을 기다리는 이들이다. 대기 기간이 만 하루가 지나지 않은 병상 대기자까지 감안할 경우 수도권에서만 대기자는 이미 1000명을 뛰어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17~18일 중환자가 522명, 506명을 기록하면서 병원들은 ‘병상 초비상’ 사태다. 이날 본지 취재진이 수도권의 주요 대형 병원을 취재해보니 “이제는 한계”라는 병원이 상당수였다.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선 “우리는 ‘위드 코로나’ 시작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병상이 모두 차 계속 가동률 100% 상태”라며 “병상 하나당 의사 5~6명씩 붙어야 해서 의사들이 그야말로 모든 힘을 갈아 넣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병원에서도 “중환자 병상이 달랑 2개 남아서 하루 이틀 안에 병상이 모두 차도 놀랄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부는 19일 수도권 22개 상급종합병원장들과 긴급 회의를 열고 신속한 추가 병상 확보를 당부한다는 방침이다.
◇임시변통 거듭하는 정부
문제는 병상 부족이 예견됐던 일인데도,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수도권 병원 한 감염내과 교수는 “작년 12월에 그렇게 병상 부족 문제를 겪고도, 병원들 쪼아서 중환자 병상을 늘렸다 줄였다 하는 임시변통 말고 1년이 지나도록 내놓은 근본 대책이 하나도 없다. 병원장 모아서 ‘도와주세요’ 하면, 병원장들이 ‘우리도 애로가 많다’고 반복하는 회의는 해서 뭐 하냐”고 했다.
수도권 병상 상황은 시급한데 ‘비상 계획’(서킷 브레이커)을 발동할 상황은 아니라는 당국 설명도 모순이란 지적이 나온다. 손영래 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19일 “비상 계획을 발동할 상황은 아니다”라면서 “전체 유행 규모가 증가하면서 중증 환자가 늘어난다기보다는 취약 시설을 중심으로 감염이 되고 있어 종전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화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교수는 “병원에는 행정명령까지 내려 빨리 병상을 확보하라면서, 아직은 비상 조치를 고려할 때가 아니라는 건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고 했다.
당국이 위드 코로나를 시행하면서 하루 확진자 5000명까지는 버틸 여력이 된다고 했는데, 2000~3000명대 확진자 규모에도 의료 시스템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된 상황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재욱 고려대의대 교수는 “애초에 중환자 병상이 이렇게 부족해질 거라고 제대로 예측 못 해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외국처럼 공터에 음압 격리 병상 100개를 만들든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