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과 부작용 사이 인과관계를 정부가 입증하라.”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8일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피해보상제도를 전면 개편하라’는 성명을 내고 이같이 밝혔다. 정부가 백신 외 부작용과 관련한 다른 원인을 증명하지 못하면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 피해자 입증 책임을 줄여주자는 취지다.
변협은 “정부는 (부작용과) 백신과 인과관계를 엄격하게 판단하여 국민이 백신 접종으로 입게 되는 피해 구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백신 피해자들의 생명권·행복추구권 등 기본적 인권침해 소지와 관련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한다”고 했다.
이어 백신 부작용 피해 보상에 가습기살균제 특별법과 같은 ‘인과관계 추정 원칙’을 적용하자는 의견을 냈다.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5조는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사실이 있으며, 이후 질환이 발생하거나 기존 질환이 악화했다면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자는 얘기다. 변협은 “백신 접종 사실이 입증되면 백신으로 인한 생명 또는 건강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국가가 다른 원인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손실 보상을 하도록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현재는 백신 부작용에 대한 입증 책임 소재나 절차를 규정한 법 규정이 없다. 따라서 재판까지 가면 피해자가 입증 책임을 지게 된다. 야당에서는 질병관리청장이 백신 부작용 인과성 입증 책임을 지도록 하는 감염병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사실상 논의되지 않고 있다.
변협은 “현재 상용되는 코로나 백신은 단기간에 개발된 탓에 부작용에 대한 임상 시험 자료가 부족하다”며 “일부 백신은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아 접종이 중단되는 사례까지 있었다”고 했다. 현재 백신 피해 인과성은 질병청 예방접종 피해조사반이 평가해 결정하는데, 지난달 26일까지 백신 접종과 인과성을 밝혀달라고 신청해 질병청이 평가한 1029건 사망 가운데 2건, 중증은 1265건 가운데 5건을 각각 인과성을 인정했다. 인정된 사례 7건은 혈전증, 심근염, 심낭염 등이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정부가 민간 전문가 등을 통해 판정을 내리는 구조여서 피해 구제에 소극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질병청은 민간 전문가를 중심으로 예방접종 피해보상 전문위도 운영 중이다. 위원회는 이제까지 38만 건 이상 반응 가운데 6753건을 심의해 2864건에 대해 진료비, 간병비 등 보상 결정을 했다. 하지만 액수가 큰 사망보상금·장제비 지급은 단 1건에 그쳤다. 우리나라 전체 접종자 수 대비 예방접종 피해보상 인정 비율은 0.007%에 그친다. 이에 대해 변협은 전문위원 대부분이 의약 분야 종사자들이라며 “피해자 입장에서 심의·평가할 수 있도록 법률가들을 충분히 투입하는 등 인적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변협은 “역학조사에 관여한 의사는 피해보상심의위원회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질병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보상 인정 비율은 매우 높은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질병청은 “OECD 37개 회원국 중 13국(35.1%)이 국가 예방접종 피해보상제도를 운영 중”이라며 “이 중 6국(16.2%)에서 피해보상 인정 건이 확인됐다”고 했다. 또 “예방접종 피해보상 인정 비율은 우리나라가 (전체 접종자 수 대비) 0.007%로 핀란드(0.002%), 스웨덴(0.0001%), 일본(0.00007%), 미국(0.0000004%)과 비교하면 오히려 높다”고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현행 백신 부작용 인정 체계는 다른 법률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들어 산업재해나 환경성 질환 등에서 입증 책임이 피해자가 아닌 사업주 등으로 변화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백신에 대한 거부감을 낮춰 미접종자를 접종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현행 인과성 입증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최근 백신 피해자 유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발생률, 신고율을 분석 중이고, 외국 참고 자료를 통해서 한국형 인과성 기준을 마련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