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이 허물어지고 있다. 7일 하루 확진자는 역대 최대인 7175명. 8일에도 오후 11시까지 확진자가 6000명을 넘었다. 이틀 연속 폭증이다. 최근 한 달간 병상이 없어 치료조차 못 받고 숨진 국민이 30명 안팎이다. 국민 생명이 위태로운 와중에 ‘방역 사령부’인 정부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매우 엄중해진 코로나 상황과 관련해 특별 방역 대책을 철저히 이행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정부는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방역 상황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청와대 박경미 대변인을 통해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했다. 직접 나서지 않고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낸 것이다. 과거 ‘K방역’ 성과를 국내외에 알릴 때 직접 나섰던 것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코로나 확산세는 정부 예측을 번번이 뛰어넘으며 악화하고 있다. 11월 초 2000명대에서 보름 만에 3000명대, 다시 열흘 만에 4000명대, 이어 닷새 만에 5000명대로 가더니 그 뒤 1주일 만에 7000명대로 껑충 뛰었다. 8일 국회 서정숙 의원실(국민의힘)이 방역 당국에서 받은 ‘단기 예측치’ 자료에 따르면, 이달 말 하루 확진자는 9000여 명, 다음 달 말엔 1만1000여 명까지 나올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다. 지난달만 해도 당국은 이달 말 예측치를 6500명으로 잡았다가 상황이 악화하자 8000명, 9000명 등으로 급히 수정하고 있다. 정재훈 가천대의대 교수는 “내년 상반기 하루 2만명 이상, 최악에는 8만~10만명까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코로나 확진자 대비 사망자를 가리키는 치명률도 심각하다. 국제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7일 기준 한국의 코로나 치명률은 1.42%로 지난 7월 0.1%대에서 5개월 만에 14배 상승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국 중 9위, 주요 7국(G7) 중 미국(2.19%)을 제외하곤 가장 좋지 않다. 세계 평균(1.41%)보다도 높다.
그야말로 방역 상황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인데 방역 현장은 김부겸 국무총리가 이끄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중증화율을 잘못 계산해 발생한 병상 부족 사태 등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지난 7월 백신 예약 시스템 오류 사태 때는 참모들을 크게 질타한 것과는 또 다른 태도다.
확진자 규모 급증도 문제지만 중환자 발생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건 정부 패착으로 꼽힌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당초엔 중증화율을 1.6% 정도로 가정해 병상을 충원하고 확보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재 코로나 환자 가운데 중증으로 악화하는 비율이 2.0~2.5%로 높게 나와, 중환자가 늘고 병상 부족 상황이 초래됐다. 전문가들은 “결국 고령층 부스터샷 접종 실기(失期)로 인한 ‘나비 효과’”란 분석이다. 정부가 확진자와 중증 환자 대량 발생을 예측하지 못하고 미리 대비책도 마련해두지 않은 탓에, 작년 12월 3차 대유행 때 겪은 ‘병상 대란’은 딱 1년 만에 되풀이되고 있다.
중증 환자는 7일 840명으로 첫 800명대가 나온 데 이어 이달 말 1645명까지 나올 것이란 예측(국가수리과학연구소)도 나와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국민과 대화에서 “확진자 5000명, 1만명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대비했다”면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오미크론 변이까지 겹치면서 다시 거리 두기를 일부 강화한 현 상황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도, 사과도 않고 있다. 최근까지도 코로나와 경제 상황을 언급하면서 “어느 나라보다도 경제 회복이 빠르다” “세계 최고 수준 접종 완료율을 달성했다” “K방역은 국제 표준이 됐다”며 자찬한 바 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매일 비공개로 참모진과 각 부처 보고를 받고 엄중히 대응 중이라고 전했다. 김 총리와 주례회동 등을 통해 상황을 공유하며 장차관들을 현장에 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특별 방역 회의를 연 데 이어 7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앞으로 4주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라며 “K방역의 성패가 걸려 있다는 각오로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방역 현장도 가고 방역 특별 회의를 주재하면서 최근 상황에 대해 국민 앞에 직접 설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기고 있지만, 전면에 나서면 오히려 국민 불안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김부겸 총리는 민방위복으로 불리는 노란색 점퍼를 벗지 못하고 거의 매일 중대본 회의와 현장을 다니고 있다. 이날도 문 대통령을 대신해 김 총리는 각 부처 장관과 처·청장들에게 “해당 부처 소관 분야와 시설에 대해 현장 점검을 9일 오전까지 반드시 실시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6일부터 실시 중인 강화된 방역 조치가 현장에서 원활하게 이행되는지 면밀히 점검하고, 보완 사항을 발굴해 개선 방안을 보고하라는 취지다. 김 총리는 “이달 31일까지 이어지는 4주간 특별 점검 기간 동안 방역 상황이 조속히 안정될 수 있도록 부처 내 역량을 총동원해 대처해달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