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일) ‘단계적 일상 회복’을 시작한 뒤 확진자가 폭증하자마자 ‘응급실 붕괴 위기’라고 느꼈습니다. 현재 응급실 상황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코로나 치료 현장 최일선인 응급실 의료진으로 구성된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경희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14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미 단계적 일상 회복 이전부터 한계가 오고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 안 좋아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악화할 것”이라고 했다.

14일 오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의료진이 구급차에 실려온 코로나 중환자를 옮기고 있다. 전날 코로나 사망자는 94명으로 100명대를 눈앞에 뒀으며 병원에서 치료 중인 중증 환자 규모도 900명을 넘어섰다. /박상훈 기자

이 회장이 응급의학의사회 소속 회원 등에게 전해 듣거나 직접 경험한 응급실 상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코로나 진료에 의료 자원이 집중되고 있지만, 정작 재택 치료 중인 코로나 환자들은 증상이 악화해도 입원할 병상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은 “주변 소형 병원과 요양병원 등에서 환자를 받아달라는 요청이 매일 20~30건씩 오지만 그중 1건도 못 받는 날들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이전엔 30건이 들어오면 20건 정도, 단계적 일상 회복 이전까지만 해도 30건 중 10~12건 정도는 전원 요청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여력조차 소진됐다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 양성이지만 다른 질환으로 응급실을 방문해야 할 환자들이 갈 곳이 없는 실상도 알렸다. “최근 코로나 판정을 받은 만삭 임부가 서울 시내 병원 응급실에 진료 요청을 했지만 그럴 수 있는 병원이 한 곳도 없었어요. 진통은 있지만 태동(배 속에서 태아의 움직임)이 없는 응급 상황에서 시간이 지체되니 아이는 숨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회장은 “대전 지역의 한 코로나 환자도 전국의 모든 병원에서 입원을 거절당해 응급 맹장 수술이 어려웠던 사례도 있었다”고도 했다.

대부분의 응급실은 혹시 모를 상황을 방지하려 코로나 환자뿐만 아니라 발열·호흡기·의식저하 증상을 보이는 코로나 의심 환자들을 모두 격리 시설에서 진찰하는데, 이 환자들이 오랫동안 격리 시설에 머물며 병상 배정만 기다리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최근 경희대병원 응급실에선 120시간이 지나서야 병상 배정을 받은 환자도 있었다. 이 회장은 “코로나 환자 1~2명이 격리 병상에 누워 있으면 응급실 의사 2~3명 간호사 3~4명은 D레벨 방호복을 입은 채로 이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밥 주고, 약 주고, 화장실 수발까지 들어야 한다”며 “(그러니) 일반 응급 환자를 돌보기 어려워지는 ‘마비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건 코로나 환자 치료뿐 아니다. 중환자 치료 체계 전반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코로나가 아닌 다른 질환의 응급 환자 치료에도 차질이 생기고 있다. 애초에 응급실을 폐쇄하고 코로나 환자만 전담하는 병원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응급실에서 입원, 수술, 처치, 전원 등 모든 과정에 2~3시간 추가 대기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아도 내줄 병상이 없다.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야 하지만 받을 수 있는 응급실이 없을 것”이라며 “1%의 코로나 환자가 응급 의료 자원의 절반 이상을 쓰고 있으니 당연히 99%의 일반 환자에 대해선 진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구급대가 발열 환자를 음압실이 없는 병원에 데려오거나 심장혈관조영술이 불가능한 병원에 흉통 환자를 받아달라고 요구해 의료진과 갈등이 빚어지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응급실의 문제가 아닌 것을 응급실을 압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며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환자를 살리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인데 지금은 환자들에게 모든 걸 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안 돼 좌절감을 느껴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는 응급 의료 체계의 보완을 강조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생각에 따라 (응급 의료) 체계를 만들면 현장에서 삐걱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전국 응급실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정부가) 조사부터 해야 합니다. 의료 현장과 소통해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