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일부터 시작된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가 좌초됐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1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정부는 현재 방역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좀 더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조치를 시행하고자 한다”고 발표했다. “하루 확진자 1만명까지 감당할 수 있다”던 방역 당국의 장담이 확진자 7000명대에서 ‘위드 코로나 포기’ 선언으로 바뀐 것이다. 위드 코로나 출발 45일 만에, 문재인 대통령의 “후퇴는 없다” 발언(지난달 29일) 이후 16일 만이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다시 급증하면서 8천명선에 육박하고 위중 환자도 전날보다 58명이나 늘어난 900명대 후반을 기록한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정부는 16일 오전 김 총리 주재로 열리는 중대본 회의에서 방역 강화 방안을 확정해 같은 날 오전 11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발표한다. 지난 6일부터 기존 8~10명(수도권·비수도권)에서 6~8명으로 축소한 사적 모임 인원 제한은 4명으로 더 줄이는 방안이 유력하다. 전국적인 병상 부족 사태를 감안해 이번엔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나누지 않고 같은 인원 수를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식당·카페를 비롯해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도 오후 9~10시까지로 당기는 방안이 검토됐다. 업종에 따라 제한 시간을 다르게 설정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이번 거리 두기 강화 방안을 토요일인 18일 전후 시작해 내년 초까지 2주간 시행한 다음, 이후 코로나 확산 상황을 보고 재연장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지난해 12월 ‘3차 대유행’ 당시 도입했던 거리 두기 강화 방안과 비슷한 수준으로 ‘위드 코로나’ 이전으로 유턴(U-turn)하는 셈이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방역 패스’를 확대해 지금은 적용하지 않는 결혼식장, 놀이공원·워터파크, 상점·마트·백화점 등을 포함시키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스터샷(추가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방역 패스 유효기간을 기존 6개월에서 4~5개월로 단축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다만 방역 패스와 관련한 대책들은 16일 발표에서는 빠지고 이후 논의를 거쳐 발표할 수 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다시 근심 깊어지는 자영업자들 - 15일 저녁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종업원들이 손님이 한 명도 없어 텅 빈 가게에 앉아 TV 뉴스를 보고 있다. 정부는 ‘위드 코로나’를 멈추고 사적 모임 인원 축소와 영업시간 제한 재도입 등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화하는 방안을 확정해 16일 발표할 방침이다. 자영업자 단체는 “왜 정부와 방역 당국의 무책임이 또다시 자영업자에게만 떠넘겨지는 것이냐. 방역 협조는 이제 끝났다”며 오는 22일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고운호 기자

방역 강화에 따른 피해 보상 대책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관계 법령 등을 개정해 영업시간 제한뿐 아니라 사적 모임 인원 제한에 대해서도 보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지금은 영업시간을 제한했을 경우에만 매출액 하락 등을 보상해주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위드 코로나’ 포기를 선언한 데는 걷잡을 수 없이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의료 체계가 붕괴되고 있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14일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7850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새로 썼다. 15일에도 오후 11시 현재 전날 같은 시각보다 500명 이상 많은 7500명을 넘어 8000명대에 육박하고 있다. 중증 환자는 964명, 하루 사망자는 70명이 나왔다.

정부의 ‘위드 코로나’ 포기 선언 사태는 자초한 측면이 크다. ‘위드 코로나’ 이후 벌어질 방역 상황 대비가 미흡했고, 특히 병상 부족 사태에 대해선 예상조차 못했다. 통계청 모바일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한 주간(6~12일) 전국 인구 이동량은 방역 대책이 강력하던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4.7% 증가했다. 이런 현상은 한 달 전부터 시작됐다. 위드 코로나를 시작한 지 보름 지난 11월 셋째 주에도 전년 동기 대비 이동량이 7.2% 늘었고, 넷째 주 12.6%, 12월 첫 주 15.6%로 계속 올라갔다. 업종별로는 관광지(15.4%), 대형 아웃렛(12.8%), 상업 지역(9.5%), 레저 스포츠(9.3%) 등에서 작년 대비 방문이 늘었다. 갑자기 인원 제한 등을 푼 위드 코로나 시행 직후부터 인구 이동량이 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확진자가 급증하며 병상 부족 사태가 닥친 것이다.

코로나 중증 환자 체크중인 의료진들 - 15일 경기 오산에 있는 코로나 거점 전담병원 오산한국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15일 0시 기준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7850명. 또다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정부는 ‘위드 코로나’를 당분간 중단하고 코로나 확산세를 잡기 위해 거리 두기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연합뉴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방역 강화’를 주장했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 정책 결정에 관여한 한 감염병 전문가는 “지난달 중순 이후부터 정부에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으나 소용없었다”고 했다.

아스트라제네카(AZ)를 비롯한 백신 면역 효과가 3개월이 지나면 최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는 사실이 알려졌는데도 ‘부스터샷’ 접종을 서두르지 않았다는 점도 비판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3차 접종이 해외에 비해 출발부터 늦은 데다, 2차 접종률을 끌어올리는 데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빠르게 3차 접종을 진행할 기회를 잃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복수의 정부 고위 관계자들도 “우리나라의 3차 접종 시작이 다소 늦은 것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14일까지 3차 접종률은 인구 대비 15.5%에 그치고 있다.

내년 2월부터 청소년들을 상대로 방역 패스 적용을 확대하겠다는 방안도 학부모들 반발로 연기를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자영업자와 학부모 눈치를 보다가 뒤늦게 등 떠밀리듯 거리 두기 강화를 선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이날 중증·사망자 급증과 관련, “미접종자들에 대한 방역 패스를 강화하는 대책과 추가 접종 속도를 최대한 높여 빠르게 확산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대책”이라며 “(거리 두기 강화로) 사회 전체 접촉을 줄여나가는 조치까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미접종자 백신 접종에도 더 속도를 내서 확진자 발생 규모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15일 0시 기준 한 차례도 백신을 맞지 않은 인구는 824만명에 달한다.

이날 오후 열린 일상회복지원위 방역의료분과에서도 전문가들은 “강력한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방문 시 마스크를 벗고 대화할 위험이 있는 시설에 대해서는 방역 패스 적용 대상으로 추가 지정하자” “수도권에서는 모임 숫자를 2명까지 줄이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영업자 등은 “급격한 거리 두기 강화 일변도로 가선 곤란하다” “손실 보상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