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는 27일 미국 화이자의 먹는(경구용) 코로나 치료제 ‘팍스로비드’에 대한 긴급사용을 승인하면서 사용 대상을 나이나 기저 질환 때문에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경증이나 중등증 코로나 환자라고 밝혔다. 성인이거나 12세 이상이면서 몸무게 40㎏ 이상이면 약을 쓸 수 있다.
경증(mild)은 증상이 참을 수 있는 정도, 중등증(moderate)은 증상이 일상생활을 방해할 만큼 불편한 정도를 뜻한다. 팍스로비드를 쓰면 이런 환자의 증상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중증(severe)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강립 식약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팍스로비드가) 생활치료센터 입소자 또는 재택 치료 환자가 중증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팍스로비드는 경증~중등증 고위험 비입원 환자 2246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증상이 나타났을 때 5일 이내에 투여하면 입원이나 사망 환자 비율이 88% 줄어든 것이 확인됐다. 임상시험에는 한국인 19명 등 아시아인 300명이 포함됐다.
다만 식약처는 임신한 여성의 경우, 유익성이 위해성보다 높을 경우 약을 투여하고, 수유를 하고 있다면 약을 먹는 중에는 수유를 중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중증 간 장애나 신장 장애 환자에게는 투여를 권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등증의 신장 장애 환자는 용량을 줄여 투약해야 한다.
식약처는 팍스로비드가 오미크론 등 변이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다. 약의 원리가 단백질 분해 효소를 차단해 코로나 바이러스 복제에 필요한 단백질 생성을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까지 나온 주사형 항체 치료제는 오미크론 변이에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잇따라 나오고 있다. 식약처는 “팍스로비드는 미각 이상, 설사, 혈압 상승 및 근육통 등 일부 부작용은 있었지만 대부분 경미했고, 안전성에 대한 우려 사항은 없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방역 당국은 “(팍스로비드) 초도 물량이 빠르면 내년 1월 중순 국내에 도입된다”고 했다. 팍스로비드는 의사 처방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보건소 등과 협의해 집에서 치료 중인 환자에게 배송할 방침이다. 방역 당국은 필요한 경우 생활치료센터 입소자나 코로나 치료 병원 입원 환자에게도 팍스로비드를 쓸 계획이다. 어느 경우든 환자가 직접 약국에서 약을 타는 방식이 아니며 환자는 약값을 부담하지 않는다.
다만 초기 도입 물량에 따라 고령·고위험군 순으로 처방받을 수도 있다. 27일까지 정부가 선구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힌 팍스로비드가 36만2000명분 수준이기 때문이다. 구매 계약을 체결한 머크의 몰누피라비르 24만2000명분을 합치면 우리 정부가 구매 계약을 체결한 먹는 코로나 치료제는 현재까지 총 60만4000명분이다. 다만 몰누피라비르는 치료 효과가 30%로 팍스로비드(88%)보다 떨어지고, 부작용 문제로 임신부 등에게는 쓸 수 없다. 정부는 몰누피라비르에 대한 긴급사용 승인 여부를 검토 중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이상원 역학조사분석단장은 “오미크론 확산과 단계적 일상 회복에 대비하기 위해 기존 계약 물량과 별도로 추가 구매 계약(40만명분)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먹는 치료제가 국내에 본격 도입되면 백신 접종 위주였던 코로나 대응 체계가 크게 바뀔 전망이다. 특히 그동안 의료 시스템에 부담을 줬던 중증 환자와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충분한 양을 확보할 수 있을지, 제약 회사들이 주문에 맞춰 얼마나 빠르게 생산해 공급할지가 변수다. 천은미 이화여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위드 코로나를 가능하게 하려면 결국 백신보다 치료제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며 “치료제가 본격 도입되기 전에 약을 받을 사람을 누가 정할 것인지, 환자가 처방전 발행 이후 약을 어떻게 받을지 등에 대해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