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서울에서 가게를 운영해온 황모(37)씨는 최근 처음으로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코로나 이후 매출이 급감해 불안해하다가 한달 전 폐업했는데, 접고 나니 더욱 우울해져 말수는 사라지고 표정은 심하게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병원에 데려가 약 처방도 받았지만, 그는 “막막한 미래가 두렵기만 하다”고 했다. “내 청춘 다 바친 사업장이었는데 남은 건 빚밖에 없어요. 남들은 아파트값 올랐다,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데 나는 막일이라도 해야 할 판이죠. 요새는 그마저도 떠올리기 싫네요.”

코로나가 우리나라를 집어삼킨 지 2년이 넘어가면서, 발생 초기인 2020년 3월과 비교할 때 우울감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취업·결혼·출산 등 인생의 중요 고비에서 직격탄을 맞은 30대 남녀에게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해야 하는 동시에 안정적 기반은 쌓지 못한 젊은 연령대일수록 ‘코로나 블루(우울감)’를 심하게 앓고 있는 것이다. 반면 코로나 자체를 향한 두려움과 불안은 시간이 가면서 차츰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전국 19~71세 성인 2063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1~13일 온라인을 통해 진행했다.

코로나 이후 조사 결과가 최악으로 나왔던 지난해 3월에 비하면 이번 결과는 우울감이 심해지면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까지 고려해 본 비율이 16.3%에서 13.6%로 줄어 다소 나아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 발생 초기와 비교하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이들이 2020년 3월 9.7%에서 지난해 12월 13.6%로 40%나 증가해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자살을 떠올린 사람이 가장 많은 나이대는 30대 남성(22.4%)으로 전체 성별과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은 20대 여성(17.3%)과 20대 남성(17.2%)이었다. 나이가 많을수록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은 낮은 경향을 보였다.

지난해 12월 연령·성별 우울 점수(점) /보건복지부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면서 국민 5명 중 1명은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특히 사회의 ‘젊은 피’인 30대 남녀에서 우울 점수와 우울 위험군 비율이 가장 높았다. 30대의 우울 점수는 6.4점으로, 점수가 가장 낮은 연령대인 60대 이상(4.2점)보다 1.5배 높았다. 우울 위험군 비율은 27.8%로 60대 13.8%(2배), 50대 16%(1.7배)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30대의 우울 점수와 우울 위험군 비율은 2020년 3월 조사 시작 이후 지속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성별로는 여성이 우울 점수와 우울 위험군 모두 남성보다 높았다. 특히 30대 여성의 우울 점수는 총점 10점에 7점, 우울 위험군은 33%로 3명 중 1명이 위험 수준의 우울감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진희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번 조사는 특히 어린 자녀를 돌보면서 가사 노동을 하고 일도 하는 젊은 여성들이 정신건강의 악화를 제대로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코로나가 일과 가정 양립의 최전선에서 노동 시장의 불확실성과 육아 부담, 주거 부담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30대 여성들에게 치명타를 입혔음을 여실히 입증한다”고 했다. 다만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 점수는 총점 3점 중 1.7점, 불안 점수는 총점 21점 중 4.6점으로 감소 추세를 보였다. 일단 길들여지면 익숙해지는 인간의 편향성이 여기서 드러난다.

지난해 12월 연령·성별 자살생각률(%) /보건복지부

‘집콕’이 늘면서 온 가족이 집안에서 부대끼는 것에 익숙해진 코로나 시대에 ‘가족’은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 중 62.3%가 자신들의 ‘심리적 지지 제공자’라고 꼽을 만큼 소중한 존재임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다만 20대는 45.8%만 ‘가족’이라고 답해 68.7%에 달한 50·60대보다 크게 낮았다. 가족 대신 ‘친구 및 직장동료’라고 답한 경우(34.8%)도 60대(14.7%)보다 매우 높았다. 심리적 어려움을 대처하는 데 도움 되는 사람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역시나 우울감이 큰 30대가 13.6%로 가장 높았다. 20대도 12.4%로 40~60대(9~11%)에 비해 높았다. 보건복지부 정은영 정신건강정책관은 “코로나가 2년 가까이 장기화하면서 자살률 증가 등 국민 정신건강이 나아지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전문가들도 경제적·사회적 영향이 본격화하는 시기에 정신건강 문제가 심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어 앞으로 단계적 일상회복과 함께 국민 정신건강 회복을 위한 정책을 촘촘히 지원해 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