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대형(면적 3000㎡ 이상) 상점과 마트, 백화점을 방역패스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식당·카페는 마스크 착용이 어려워 감염 위험도가 다른 다중이용시설보다 높은 반면, 상점·마트·백화점은 많은 사람이 모일 가능성은 있으나 이용 형태에 비춰볼 때 취식이 주로 이뤄지는 식당·카페보다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형 상점·마트·백화점을 생활 필수 시설로 보고, 백신 미접종자들이 이런 필수 시설까지 못 가게 하는 건 지나치게 과도한 제한으로 판단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독거노인이나 혼자 사는 사람들이 생필품 사러 마트에 가는 건 생존권의 문제”라며 “대형 마트에 방역패스를 적용하는 건 애초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위험 시설 일부에 대해선 방역패스가 필요하지만, 그 외에 일률적으로 방역패스를 적용하는 건 문제가 많았다”며 “앞으로 과학적 분석에 따라 해제가 필요한 곳은 추가로 해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법원 결정은 정책 취지 자체를 부인하는 의미라기보다 방역패스 적용 범위가 과도하게 넓지 않냐는 지적”이라며 “방역패스는 유행 차단에 긴요했고 효과도 상당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방역패스는 정부가 지난해 11월 1일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 조치와 함께 시작한 방역 정책이다. 유흥 시설, 노래연습장, 목욕탕, 실내 체육 시설 등 다중 이용 시설에 이용 시 백신 접종자 등에게만 출입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지난달 6일 식당, 카페, 학원, 독서실, 스터디카페, 영화관 등으로 대상 범위를 넓힌 데 이어, 10일엔 3000㎡ 이상 대규모 상점과 마트, 백화점을 추가했다.
방역패스 범위가 급속도로 확대되자 시민들이 반발했다. ‘방역패스 처분 취소 소송’이 잇따랐고, 집행정지 신청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부작용 발생 위험이 있는 백신을 접종받도록 사실상 강제하는 방역패스는 개인의 신체 결정권을 침해해 부당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방역 전문가들은 정부가 좀 더 신중하고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정재훈 가천대길병원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백화점이나 마트처럼 이용자가 마스크를 잘 쓰고 있고 방역패스 적용에 따른 추가적 이익이 명백하지 않은 시설에 대해 법원이 짚고 넘어간 건 (방역패스)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방역 정책과 관련된 사안이 이렇게 쉽게 가처분 신청 인용되는 게 안타깝다”면서도 “백화점이나 마트는 방역패스 적용 대상으로 추가될 때부터 논란이 많았던 시설들이라 그 영역만 제외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방역패스 효력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날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가 또 다른 대형 백화점·점포·마트에 대한 방역패스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방역패스로)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인정되더라도 그 가능성을 해소하기 위해 처분 효력을 긴급하게 정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신청인은) 온라인 환경에 익숙한 것으로 보여 온라인을 통한 물품 구매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박향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오늘 두 결정이 시간 차를 두고 나왔는데 판단이 엇갈렸기 때문에 (정부는) 주말 동안 여러 상황을 종합 검토해 다음 주 대응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