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전국 주요 병원이 올해 의대 졸업생들을 상대로 인턴(수련의) 모집을 했는데, 이른바 ‘빅5′라고 하는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 5곳 중 2곳이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155명을 뽑으려 한 신촌세브란스병원은 7명, 133명을 모집한 서울아산병원은 1명이 각각 정원에 모자랐다. 두 병원의 인턴 모집에 ‘미달’이 나온 건 각각 2007년, 2013년 이후 처음이다. 반면 2년 전만 해도 인턴 모집 때 종종 미달이 나왔던 국립중앙의료원과 중앙보훈병원 등 공공 병원은 인턴 경쟁률이 각각 2.32대1, 1.7대1로 높아졌다.
의료계에서는 젊은 의사들의 가치관이 많이 달라진 여파란 반응이 나온다. 공공 병원이나 비수도권 병원은 서울 대형 병원보다 상대적으로 내부 경쟁이 덜 치열해, 인턴을 마친 뒤 피부과나 안과 등 인기 있는 진료과를 더 쉽게 고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의대생이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면 의사 자격이 생기지만, 전문의 자격을 얻기 위해 실제 환자들을 돌보는 병원에서 인턴 1년과 레지던트(전공의) 3~4년을 거치며 일종의 교육을 받는다. 한번 인턴으로 들어간 병원에서 대다수가 레지던트까지 거치기 때문에 특정 병원의 인턴 지원율은 의대생들의 병원 선호도와 비슷하다고 한다.
지난달 25일 인턴을 받을 수 있는 전국 수련 병원 79곳의 인턴 전기(前期) 모집이 마감됐는데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과 서울아산병원 등 빅5의 경쟁률이 화제가 됐다. 2곳이 정원을 채우지 못한 데다, 나머지 3곳도 경쟁률이 1~1.2대1 정도에 그친 것이다. 의대 졸업생들은 자기가 졸업한 의대의 소속 병원을 지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빅5는 최근 4~5년간 해마다 정원보다 인턴 지원자가 10~30명 안팎 더 몰리는 등 꾸준히 인기가 좋았지만 상황이 변한 것이다.
의료계에선 젊은 의사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실속을 중시하는 성향이 반영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특히 의대생들 사이에서는 서울의 유명 대형 병원에서 인턴을 시작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치열하게 일해도 피부과⋅안과⋅성형외과 등 이른바 ‘인기 과’를 가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가 많다. 그렇다 보니 국공립 기관에서 운영하는 공공 병원이나 비수도권 병원에 지원하는 것이 더 편하게 인기 과로 진입하는 길이란 인식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공공 병원뿐 아니라 일부 비수도권 대학병원의 인턴 경쟁률도 다소 증가한 경향이 나타났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전남대병원은 이번 인턴 모집 때 91명 정원에 96명이 지원, 10년 만에 처음으로 미달을 면했다. 의대생 김모(26)씨는 “이름난 서울의 대형 병원을 다니면 처음에는 뿌듯할 수 있지만 자칫 내부 경쟁에서 밀려나면 고생만 하고 기피하는 과에 가게 될 수 있어, 서울에서 의대를 다녔더라도 비수도권 병원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이번에 인턴에 지원한 황모(26)씨는 “공공 병원은 대부분 코로나 전담 병원이 되면서 코로나 치료와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과는 상대적으로 여유롭다는 얘기가 돌았다”면서 “그게 이번에 경쟁률이 높아진 원인 같다”고 했다.
의사들 사이에선 이런 경향이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 특정 분야 쏠림 현상을 더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람의 생명과 직접 관련이 있는 만큼 고되지만 중요한 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은 앞으로 인력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대한의사협회 박수현 대변인은 “인턴·레지던트에 대한 열악한 수련 환경과 외과 등 중요 분야의 처우를 개선해 젊은 의사들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