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유행으로 확진자가 폭증하는 가운데 정부 내에서 거리 두기를 완화하겠다는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대신 방역패스는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리 두기는 느슨하게 하면서 미접종자에게 적용되는 방역패스는 그대로 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확산세가 아직 정점에 이르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방역 조치 완화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한다.

검사 키트 개당 6000원에 판매… 재택치료약, 전국 동네약국서 판매 - 15일 경남 창원시의 한 약국이 코로나 자가검사키트를 낱개로 판매하고 있다. 정부는 다음 달 5일까지 키트의 개당 가격을 6000원으로 고정했고, 16일부터는 모든 동네 약국에서 해열제 등 재택치료용 약품을 조제·판매할 수 있게 했다. /김동환 기자

정부는 다음 주부터 적용될 사회적 거리 두기 조정안을 18일 발표하기 위해 사회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15일 밝혔다. 정부는 ‘사적 모임 6명, 식당·카페 영업 오후 9시까지’인 현행 사회적 거리 두기를 ‘8명, 오후 10시’ ‘8명, 오후 9시’, ‘6명, 오후 10시’ 등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다양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는 이날 밤 자료를 내고 “거리 두기 조정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전날 방송에 출연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고통을 강요해 왔는데 그분들의 협조 없이는 이 상황을 끌고갈 수 없어 절규에 답할 책임이 있다”며 거리 두기 완화를 시사했다.

정부는 방역패스는 유지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이날 “거리 두기는 전 인구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이지만 방역패스는 18세 이상 4% 인구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라며 “현재 중증과 사망 최소화를 위한 정책적 목표 달성을 위한 비용 효과성을 고려할 때 방역패스는 거리 두기보다 좀 더 유지의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방역패스를 유지하려는 것은 최근 8주간 국내 중증 환자와 사망자의 절반 이상을 미접종자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거리 두기 완화 움직임에 대해 “위기를 스스로 키우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너무 빨리 거리두기 완화 결정을 내리면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감염자가 폭증할 것”이라며 “단기간 확진자가 폭증하면 의료체계가 버티기 위험한 환경이 된다”고 경고했다. 이재갑 한림대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거리두기를 완화하겠다면, 늘어나는 환자 관리가 가능한지 보여줘야 한다”며 “요양원, 요양병원, 정신의료기관, 급성기병원 어디 하나 빼지 않고 종사자와 환자에서의 감염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 분석에 신중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확진자와 위중증·사망률 지표는 2~3주 정도 간격을 두고 나타나는데, 지금 지표를 근거로 방역을 풀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미크론 확산에 대해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모습을 노출하면서 불안감을 증폭시킨 바 있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확진자 수가 1만명대에 들어선 지난달 24일 정부는 ‘오미크론 대응 체계’를 선포하고 새로운 검사·치료 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60세 이상 고령층 등 고위험군만 PCR(유전자 증폭) 검사를 직접 받게 하고 나머지 국민은 신속항원검사를 먼저 실시하도록 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시중에 자가 검사 키트 공급량이 달리면서 약국·편의점에서 품절 사태가 잇따랐다. 온라인에서는 4000~5000원이던 키트 가격이 개당 10만원대까지 뛰었다.

정부의 오락가락 메시지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지난 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선 오미크론을 독감에 비유하며 ‘이와 유사한 일상적 방역·의료체계로의 전환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7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코로나는) 계절독감보다는 전파력이 훨씬 높고 치명률도 2배 이상 높기 때문에 계절독감처럼 관리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지난달 25일 김 총리는 오미크론 유행 정점에서의 확진자 수를 ‘3만명 정도’로 예측하면서 “10만~20만명 예측은 아주 비관적인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 7일 정 청장은 “2월 말쯤에는 국내 확진자가 13만~17만명 수준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는 다음 달 초 하루 확진자가 최대 36만명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방역 완화를 준비하기는 해야 하지만 연착륙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정부가 고심 중인 ‘거리 두기 완화’는 확진자 수, 중환자 수가 정점을 찍고 내려올 때 해야 한다”며 “확산세를 지켜보면서 천천히 하나씩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훈 가천대길병원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사회경제적인 피로 때문에 꼭 지금 방역 완화를 해야 한다면 점진적으로 하는 게 좋다”며 “완전히 다 푸는 건 (유행의) 정점이 지날 때 혹은 유행증가속도가 줄어들 때가 적기(適期)”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