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가 중단된 이후 3차 코로나 백신 접종 건수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아도 다중이용시설 이용 제한 같은 불이익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가 잇달아 방역 조치를 완화하면서 국민들의 방역 긴장감이 느슨해진 것도 접종률 하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백신 접종의 필요성이 더 커졌지만, 방역 당국은 접종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이달 1~9일 백신 3차 접종자 수는 53만6095명으로, 방역패스 중단 이전인 지난달 20~28일(101만1637명)에 비해 47% 줄었다. 미접종자의 접종 건수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 1~9일 신규 1차 접종자 수는 2만8995명으로 지난달 20~28일(4만6399명)과 비교해 37% 감소했다.

백신 접종률 하락은 방역 당국도 예상했던 것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지난달 28일 “방역패스 중단으로 청·장년층의 3차 접종에 대한 유인책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방역 당국의 고민은 접종률 제고를 위한 뾰족한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방역 당국은 백신 접종을 사실상 국민 자율에 맡기고 “3차 접종이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박향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3차 접종자는 오미크론 치명률이 0.07%로 계절독감의 0.05% 또는 0.1% 치명률과 유사한 수준까지 낮아진다”며 “방역패스를 통한 보호 조치가 중단돼 미접종자는 스스로 다중시설에 가지 않는 등 주의를 기울여달라”고 했다.

백신 접종 속도가 더뎌지면서 추후 들여오는 백신 물량의 처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올해 추가로 도입하는 백신은 총 1억3000만회분이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3번씩을 더 맞아야 소진되는 분량이다. 올해 백신 구입에 소요되는 예산은 2조6002억원이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8일 낮 12시까지 폐기된 백신 물량은 총 221만9658회분이다. 이 중 유효기간 경과로 폐기된 물량은 219만회 분량으로 99%를 차지한다. 방역패스 중단 이후 ‘접종 멈춤’ 현상이 계속되고 있어 앞으로도 폐기되는 백신이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 도입 예정인 백신 물량을 취소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방역 당국은 “비밀 유지 협약에 따라 비공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