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폭증하고 있지만 의료 현장에선 미국 화이자사의 먹는 치료제 ‘팍스로비드’ 부족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중환자와 사망자를 줄이는 데 방역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중환자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 치료제를 제대로 구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방역 당국이 밝힌 팍스로비드 계약 물량은 76만2000만명분으로, 현재까지 16만3000명분(21.4%)이 들어왔다. 이 중 17일까지 7만4514명분이 사용돼 8만8276명분이 재고로 남아 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약을 처방 받았지만 구할 수가 없다’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부산에서 코로나 재택치료 중인 김모(82)씨는 16일 관리의료기관을 통해 팍스로비드를 처방 받았다. 그런데 약국에 연락해보니 “지자체에 약이 부족해 약을 보내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씨는 “팍스로비드는 빨리 먹어야 효과가 있는 걸로 아는데, 약국과 병원은 ‘일단 기다려라’는 말만 계속 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팍스로비드는 증상 발현 후 5일 이내에 복용해야 입원과 사망 확률을 88% 줄일 수 있다.
팍스로비드 부족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가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도입 물량 자체가 적기 때문에 각 지자체에 충분한 물량을 나눠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정부가 계약 물량 76만회분 중 남은 60만회분을 신속하게 들여와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처방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중환자가 정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3월 말~4월 초를 넘겨 뒤늦게 들여오면 (필요할 때는 못 쓰고) 백신처럼 폐기되는 물량만 생길 것”이라고 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최근 물량 소진 속도가 빨라져 일주일 내외로 치료제 물량이 아예 바닥날 수 있다”면서 “적기 공급에 실패했던 지난해의 ‘백신 대란’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한의사협회 코로나19대책전문위원회는 18일 “팍스로비드의 빠른 처방과 복용이 중증 진행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데도 제대로 공급이 안 되고 있다”며 “정부는 이 같은 실책을 솔직히 인정하고 조속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질병청은 “이달 말 추가 도입 예정”이라며 “수요가 증가하면서 기존 계약 물량을 조기 도입하는 것과 함께 추가 구매하는 방안까지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