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사는 이모(77)씨는 지난 12일 자정쯤 집에서 극심한 가슴 통증을 느끼고 앰뷸런스를 불렀다. 대학 병원에 도착했지만 응급실이 가득 차 신규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태. 이씨는 다시 앰뷸런스에 실려 다른 대학 병원으로 향했지만 이번엔 수술실이 없었다. 또다시 병원을 찾아 헤매길 3시간여. 겨우 한 병원에서 수술실을 확보했지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그만 세상을 떠났다.
규모 있는 병원들마다 밀려드는 코로나 환자로 포화 상태가 이어지면서 응급처치를 받아야 할 다른 환자들까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는 규모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른바 ‘초과 사망’으로 부르는 범주다.
통계청 2021년 인구⋅사망 통계를 보면 코로나 델타 변이가 기승을 부리던 작년 12월 국내 사망자 수는 3만1634명이었다. 2020년 이전 5년 평균(2만6464명)보다 5170명 많았다. 월별 사망자 규모로도 1983년 사망자 통계를 낸 이후 가장 많다. 12월 코로나 사망자 수는 1967명. 이를 제외하더라도 평소보다 3000여 명이 더 숨진 것이다. 고령화 영향으로 사망자가 매년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이 정도 증가 규모는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 사망자 수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사망한 사람을 가리키는데,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코로나에 감염되고 검사를 받기 전 숨지거나, 코로나가 야기한 의료 과부하로 수술이나 항암 치료 등을 제대로 받지 못해 숨진 사람도 많다”면서 “코로나 사태가 없었으면 죽지 않았을 사람이 많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초과 사망’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인용되는 개념이다. 미 워싱턴대 연구팀이 얼마 전 의학 저널 랜싯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 초과 사망자는 1820만명에 달했다. 코로나 공식 사망자(600만명)의 3배에 이르는 규모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추정한 코로나 초과 사망자는 1200만~2200만명이다.
이제 국내 누적 확진자가 1000만명을 돌파하면서 전문가들은 ‘코로나 사망’은 물론 ‘초과 사망’ 역시 악화 일로로 치달을 것으로 본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오미크론 유행 기간 3만명 이상이 코로나로 사망할 것”이라고 했다. 김우주 교수는 “올여름까지 코로나 환자를 포함한 초과 사망자가 5만명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사망자가 여름까지 3만명 나온다고 가정하면 코로나로 인해 간접적으로 사망하는 사람만 2만명에 달할 거라는 뜻이다.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60세 이상 고위험군은 3차 백신 접종 후 시간이 많이 흘러 면역 효과가 떨어져 있다”며 “너무 일찍 거리 두기를 완화한 게 패착으로 판명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코로나 1차 방어선으로 여겨지는 백신은 약발이 떨어져 가고, 2차 방어선인 치료제는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골치다. 먹는 치료제 팍스로비드는 물량이 부족한 데다 처방도 까다롭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개인 병원에선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팍스로비드 처방을 꺼리기도 하고, 환자들이 팍스로비드를 처방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재택 치료 집중 관리군(60대 이상)은 확진 통보를 받고 관리 의료 기관이 지정되면 의사가 직접 전화로 약을 처방하는데, 대상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이 과정이 자주 지연되면서 치료 시기를 놓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의료계에선 “고위험군은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치료제를 투여해 중증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막아야 하는데, 첫 단추부터 끼우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지난해 11~12월 집중적으로 3차 접종을 받은 60세 이상 고위험군은 백신 효과가 점점 떨어져 간다. 그러다 보니 지난 1월 21일 8%대였던 60세 이상 확진자 비율은 20%대까지 증가했다. 이는 4월 이후 사망자 급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요인이다. 엄중식 교수는 “중증 병상 우선순위를 정하고 회생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 집중하는 의료 체계를 갖춰 곧 닥칠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초과 사망(excess death)
질병 대유행이나 대형 사고 등이 일어나 통상 예상되는 수준을 넘는 사망자가 나왔을 때 그 늘어난 만큼의 사망자를 가리키는 개념. 코로나 초과사망은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죽음’이란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