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8일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가 거의 대부분 해제된다. 코로나 확산으로 2020년 3월 22일 유흥·종교시설 등에 대해 운영 자제를 권고하면서 본격 시작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년 1개월 만에 없어지는 것이다. 다만 실내·외 마스크 의무 착용은 당분간 유지하고 2주 정도 상황을 본 뒤 야외부터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코로나 감염병 등급을 1급에서 2급으로 내리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포스트 오미크론’ 체계도 공개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15일 “현재 밤 12시까지인 다중 이용 시설 영업시간 제한과 10명까지 허용되던 사적 모임 인원 제한을 다음 주 월요일부터 전면 해제한다”고 밝혔다. 299명까지 허용하던 행사·집회, 수용 인원 70%까지만 허용하던 종교시설 인원 제한도 없어진다. 영화관, 실내 체육 시설, 종교 시설 등에서 금지했던 음식물 섭취도 25일부터 모두 해제한다.
25일부터는 코로나 감염병이 1급에서 2급으로 내려간다. 2급 감염병은 격리 의무가 없다. 김 총리는 “작년 말 도입한 재택 치료도 없어지는 등 많은 변화가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25일부터 4주간 ‘이행기’를 두고 단계적으로 변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정부 조치들은 사실상 코로나를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간주하고 ‘위드 코로나’를 공식화하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시선은 다소 엇갈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날 “코로나 팬데믹이 엔데믹에 근접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적어도 2주는 더 기다려 확진자가 더 줄고 지역사회 내 감염 전파 가능성도 낮아졌다고 확신했을 때 해야 하는 전략을 너무 빨리 펼치고 있다”며 “정권 이양기에 나타나는 조급함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확진자와 사망자가 여전히 많은데 ‘이행기’까지 두면서 감염병 등급을 낮추는 의도를 잘 모르겠다”며 “대통령 퇴임식에 맞춰 ‘K방역이 승리했다’고 홍보하고 싶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12월 이후 잠시 멈췄던 일상 회복이 재개될 것”이라면서 “신종 변이와 재유행 등에 대비해 감시 체제를 강화하고 위기가 감지될 경우 그 수준에 맞춰 의료 자원을 신속히 재가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나서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풀자 국민들 사이에선 ‘코로나 엔데믹’이 무사히 이뤄져 일상 회복에 성공할 수 있을지 기대하는 분위기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위중증 환자, 병실 가동률 등 모든 지표가 나아지며 의료 체계도 충분한 여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코로나가 완전 종식되진 않을 것이나 이제 다시 일상 회복을 조심스럽게 시도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했다. “일반 의료 체계 전환이 필요한 점도 등급 조정의 중요한 이유”다. 이어 “소규모 유행은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4주간의 이행기 동안 일반 의료 체계 내에서 신속한 대면 진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의료 체계를 철저히 준비해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각종 지표가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15일 0시 기준 국내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12만5846명으로, 최근 1주간 일평균 확진자는 16만명에 달한다. 사망자도 연일 200~300명대를 오르내린다. 코로나가 세계적 대유행으로 선포된 만큼 개별 국가가 단독으로 엔데믹을 선언할 수도 없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종식을 선언해야 비로소 엔데믹이라 말할 수 있다. WHO는 13일(현지 시각)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코로나에 대한 국제 공중보건 ‘위기’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마이클 라이언 WHO 비상대책본부장은 “코로나는 여전히 매우 불안정하고 대유행을 일으킬 여력이 있다”고 했고, 마리아 반 케르호브 WHO 코로나19 기술팀장은 코로나가 현재 높은 수준으로 전파되고 있어 엄청난 사망자와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며 “우리는 여전히 팬데믹 한가운데 있다”고 경고했다. WHO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2022 글로벌 코로나19 비상사태 종식을 위한 대비 전략 및 대응 계획’에 따르면, 가장 희망적인 엔데믹 시나리오는 향후 변이의 중증도가 매우 약해 백신을 맞을 필요가 없는 상황이지만 최악의 경우 전파력과 중증도가 모두 높은 변이가 유행해 인명 피해가 급증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정부가 감염병 등급을 낮추면서 잠정적 ‘이행기’를 두고, 위험도에 따라 다시 상향할 수도 있다고 부연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K방역 성과를 남기려고 급하게 푼다”면서 고개를 갸웃한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감염병의 등급을 바꾸는 것은 의료기관을 포함해 지금까지 국내에서 모두가 시행해온 방역 대응 지침들을 다 바꾸는 것”이라며 “이를 제대로 전환하려면 현장에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현재 오미크론 유행이 정점을 넘기기는 했으나 여전히 일 확진자는 10만명 단위로 나오고 있고, 숨은 감염자들까지 더하면 아직도 굉장히 많은 감염자들이 있는 상태다. 그런데 거리 두기를 없애고 등급을 낮춰 격리까지 면제하다 보면 예상보다 유행이 더 길어질 수 있고 그 결과 더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치명률이 높고 집단 발생 우려가 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는 여전히 1급 감염병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행기가 끝나는 시기는 새 정부가 들어선 뒤”라면서 “상황이 나빠지면 1급 감염병으로 재상향할 수 있다는 말은 (지금 하는 조치가) ‘간보기’에 불과하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아직 해외에서 우리처럼 코로나 감염병 등급을 낮춘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국가마다 감염병 분류 체계가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다”면서도 “등급에 대한 조정들을 하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은 코로나를 신종 인플루엔자처럼 신종 감염병으로 분류해 따로 관리하고 있고, 덴마크는 지난 2월 코로나를 사회적으로 중요한 질병에서 제외했다. 주요 도시를 봉쇄했던 호주는 지난 7일부터 코로나 비상 상황을 종료했다.
반면 감소세를 보였던 미국은 최근 감염이 다시 확산하면서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 착용 의무를 5월 3일까지 연장했다. 하비어 베세라 미 보건복지부 장관은 2년 넘게 줄곧 연장해온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90일 더 연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달 전 집합금지·마스크 착용 등 방역 지침을 속속 해제했던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도 최근 백신으로 인한 면역력이 줄고 ‘스텔스 오미크론’(BA2)이 우세종이 되면서 확산세로 돌아서 최근 며칠 하루 10만명대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