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에 빠져 살아날 가망 없던 아들이 이름 모를 일곱 분을 통해 살아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달 27일 0시 35분 충북대병원에서 심장, 폐, 간(분할), 췌장, 신장(좌·우)을 7명의 대기자에게 나눠주고 세상을 떠난 장준엽(21·사진)씨. 그는 사전 기증 서약 없이 갑작스러운 뇌사 판정을 받고 나서 의료진이 가족에게 장기 기증을 권유한 경우였다. 아버지 장영수(51)씨는 “평생 고생한 아들에게 ‘더는 아픔 없는 천국으로 가서 행복하게 잘 쉬어. 아빠도 열심히 살다가 찾으러 갈게’라고 했다”면서 마지막 이별의 순간을 전했다. 아들이 쓰러지고 3일, 병원으로 찾아온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직원 설득을 받고 보호자로서 결단을 내렸다. 다음 날 병원 전체에는 ‘오늘 한 분이 소중한 생명을 기증하고 떠납니다’라는 묵념 방송이 울려 퍼졌고 각 과(科) 의사들 설명 이후 수술이 진행됐다.
태권도를 즐겨 할 정도로 건강하던 준엽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뇌전증 판정을 받았다.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의식을 잃고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몸을 다치기 일쑤였다. 오는 7월 서울아산병원에서 뇌수술을 받기로 날짜까지 받았지만 지난달 집 안에서 넘어져 머리를 바닥에 부딪힌 뒤 일어나지 못했다. 그동안 가족들 도움으로 어렵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도 꿈꾸던 차였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영정 사진이 없어 아버지와 함께한 부산 여행 사진으로 대신했다. 헬스장 등을 운영하며 아들을 위해 17년 동안 고아원 등 봉사활동을 해왔다는 장씨는 “아들은 그동안 너무 외롭고 친구들을 그리워했다”며 “뇌전증은 거의 일상 생활이 가능한 병인데 세간의 오해가 있다면 풀리면 좋겠다”고 했다.
장씨는 규정에 따라 장례와 사후 행정 처리 과정에서 사회복지사 팀의 도움을 받았고, 매년 장기 기증자 추모 행사와 유가족 모임 초대 등 예우를 받는다. 2021년 전국에서 ‘뇌사 추정자’로 통보된 2141명 가운데 748명의 가족이 장기 기증 면담을 가졌고 최종 442명이 기증됐다. 그해 장기 이식 대기자는 3만9261명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