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독일에 비해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로 앞으로 노년층 부양 부담이 빠르게 늘어날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연금 개혁 타이밍입니다.”(악셀 뵈르쉬슈판 독일 뮌헨기술대 교수)
19일 한국연금학회와 국민연금연구원이 개최한 ‘지속 가능한 노후 소득 보장 제도의 구축’ 국제 세미나에서는 독일의 연금 개혁에 빗댄 한국 연금 고갈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뵈르쉬슈판 교수는 2000년대부터 독일 연금 개혁을 주도하고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 자문에도 응하는 인물. 그는 한국의 개혁 방향에 대해 “저소득층에게는 최저 소득을 보장하고 고소득층에게는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약속해줘야 한다”며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없고 최선의 방안을 찾기 힘들어도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시키려는 ‘공적연금개혁위원회’에 대해서는 “먼저 연금 전문가와 정치인들이 물밑 대화를 통해 합의안을 만들어보라”고 조언했다. 한 참석자가 “재정 파탄 위기에 직면해 연금개혁에 착수한 독일이나 스웨덴과 달리 한국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묻자, 그는 “한국의 인구구조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어 위기가 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한목소리로 연금 개혁의 지연을 우려했다. 이창수 연금학회 회장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작년 0.81로 세계 최저 수준인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다가가는 속도는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다”며 “인구 구조의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권문일 국민연금연구원장은 “연금 개혁은 정권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어렵고 힘든 과제”라고 했다.
이날 독일의 연금 개혁 사례 발표에 이어 국내 전문가들은 “독일에서 운영 중인 2~3중의 노후 안전장치처럼, 국내에서도 노후 보장 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건사회연구원장을 지낸 김상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는 “지난 1998년과 2007년 한국의 국민연금 개혁은 소득대체율이나 수급 개시 연령을 미세 조정하는 ‘땜질식’이었다”며 “앞으로 기초연금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합해 ‘최저 소득 보장제도’로 대체함으로써 노년층 빈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 추산에 따르면, 현 정부 공약대로 기초연금이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될 경우 재정 부담은 2040년 83조원에서 102조원으로, 2060년에는 193조원에서 236조원으로 급증한다. 반면 전체 노인의 70%가 받는 구조로 인해 빈곤 완화 효과는 떨어진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공약한 ‘기초연금 30만원에서 40만원 인상’은 연금 개혁 착수 이후로 늦춰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 전문가는 “기초연금을 (40만원씩) 주면 누가 국민연금에 가입하겠느냐”며 “기초연금 대상을 줄여서 가난한 노인 계층을 선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기초연금을 30~40% 정도의 빈곤층에 집중시키는 ‘최저소득 보장제’로 전환하면서, 금액을 현재 30만원에서 약 58만원 수준으로 두 배 가까이로 올리자는 주장이다.
참석자들은 “노인과 청년이 함께 지지해야 연금개혁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청년층에게 일방적인 ‘연금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래 수급자가 될 청년층을 위해 국민연금은 ‘소득비례연금’으로 개편해서 많이 낸 만큼 많이 돌려받도록 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김상호 교수는 “다른 연금이나 취업 소득에 연계해 수급액을 감액하는 규정도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연금을 통한) 1차 지원 대상은 저소득층 노인이 돼야 한다”며 “소득비례연금으로 바꿀 때 중간과 하위 소득 계층에서 연금액이 줄어들어선 곤란하다”고 했다.
연금개혁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도 “독일의 연금 개혁을 참조해 연금 개혁 대안을 마련해 보겠다”고 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정호원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며 “기금 고갈 문제뿐 아니라 현 세대의 빈곤 문제와 사회문제를 아울러서 연금 개혁과 함께 다뤄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