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다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원숭이 두창(monkeypox)’ 경보가 울렸다. 최초 발견국인 영국을 시작으로 독일·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등 유럽 대륙으로 퍼지면서 전 세계 14국에서 100명 넘는 환자가 나왔다. 유럽인 상당수가 면역이 없는 상황인 데다 지역사회 내 접촉을 통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면서 각국 방역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특히 호흡기와 피부 접촉 등 코로나와 유사한 전염 경로가 공포심을 키우고 있다.

1997년 콩고민주공화국에 원숭이 두창이 확산됐을 당시 감염 환자의 손바닥에 수포가 생긴 모습. /로이터 뉴스1

세계보건기구(WHO)는 21일(현지 시각) 긴급 자료를 통해 “이날 오후 1시까지 총 12개 WHO 회원국에서 120여 건 원숭이 두창 감염 사례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스위스와 이스라엘에서 확진자가 추가 확인되면서 발생국은 14개로 늘었다. 원숭이 두창은 천연두(두창·痘瘡)와 가까운 인수(人獸)공통감염병으로, 주로 서아프리카에서 유행하던 풍토병이다. WHO는 “원숭이 두창의 타 지역 확산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 방역 당국과 긴밀히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 방역 당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진단검사법도 있고 85% 예방 효과가 있는 두창 백신이 이미 개발된 상태이지만 잠복기가 21일이나 되기 때문에 국내 유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원숭이 두창은 지난 2018년과 2019년 나이지리아 여행객을 통해 영국과 이스라엘, 싱가포르에서 환자가 확인됐던 적이 있다. 하지만 10개국 이상에 광범위하게 확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WHO와 유럽 내 방역 당국은 원숭이 두창이 이미 지역사회 감염 단계에 들어갔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WHO는 “이 병이 어떻게 유럽으로 들어왔는지 유입 경로가 아직 확실치 않다”고 밝혔다. 다만 WHO는 “현재까지 정보를 보면 상당수 사례가 동성 간 성관계에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열흘 만에 유럽·미국·중동까지 전파

원숭이 두창은 1958년 실험실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됐다. 천연두(두창)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후 1970년 콩고에서 최초로 인간 감염 사례가 확인됐고, 이후 중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감염 사례가 꾸준히 보고됐다. 유럽 각국에서 원숭이 두창 감염 사례가 나오기 시작한 건 이달 초부터다. 영국 BBC는 “지난 13일 영국 한 가정집에서 첫 감염자가 확인됐고, 21일까지 30명 추가 감염자가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21일까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감염자가 나왔고, 독일·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이탈리아 등에서도 각각 5명 내외의 환자가 확진됐다.

유럽과 왕래가 잦은 북미와 대양주에서도 감염 사례가 확인됐다. 캐나다에서는 5명 확진자와 20명에 육박하는 감염 의심자가, 미국과 호주에서도 각각 5명 내외 감염자가 나왔다고 WHO는 밝혔다. 중동 지역인 이스라엘에서도 첫 확진자가 나왔다. 현재까지는 감염 초기로, 아직 사망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을 지낸 스콧 고틀립 화이자 이사는 미 CNBC 인터뷰에서 “잠복기를 감안하면 보고된 것보다 훨씬 많은 감염자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유럽 대부분 국가는 1970년대 초부터 천연두 백신 접종을 중단, 50세 이하 인구는 천연두 면역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원숭이 두창에 걸리면 천연두와 마찬가지로 발열·두통·근육통·피로감 등의 초기 증상을 보인 후 피부에 수포와 딱지가 생긴다. 환자의 체액, 침(비말), 오염된 침구나 성관계 등 밀접 신체 접촉을 통해 전염될 수 있다. 잠복기는 5~21일 정도다. 대체로 감염 후 2~4주 만에 회복하지만, 중증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치명률은 바이러스 변종에 따라 차이가 있다. WHO에 따르면 증세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서아프리카형’은 치명률이 3.6%, 중증 진행 확률이 높은 ‘콩고형’은 10.6% 정도다. 최근 유럽에서 발견된 것은 서아프리카형으로 파악된다. 어린이가 성인보다 더 증상이 심하며 임신 여성이 감염되면 사산 위험이 있다.

◇질병청 “국내 유입 가능성 배제 못 해”

국내에선 원숭이 두창이 보고된 적이 없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은 22일 “해외여행이 증가하고 있는 데다 최장 21일 비교적 긴 잠복기 등을 이유로 국내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질병청은 해외 발생 상황에 따라 원숭이 두창을 관리 대상 해외 감염병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아직 코로나 수준으로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면밀한 모니터링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원숭이 두창은 에어로졸(공기 중 입자)로도 전파되는 코로나에 비하면 전파력이 낮지만 상대적으로 치명률은 높기 때문이다.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세계 누적 코로나 치명률은 1.2%다.

WHO에 따르면 천연두(두창) 백신을 사용할 경우 원숭이 두창에 대한 85%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덴마크 바비리안 노르딕이 개발해 2019년 FDA 허가를 받은 천연두, 원숭이 두창 백신인 ‘임바넥스’도 있다. 질병관리청은 원숭이 두창에도 활용할 수 있는 천연두(두창) 백신 3502만명분을 비축해 놓은 상태다. 천연두 치료제인 항바이러스제 역시 원숭이 두창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감염 환자가 늘어난다면 고위험군이 감염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치명률도 같이 올라갈 수 있다”라며 “천연두 백신이 원숭이 두창에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접종 방법이 까다로워 코로나 백신처럼 대규모 접종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천연두 백신은 ‘분지침’이라는 특수한 바늘로 피부를 긁거나 찌르는 방법으로 접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