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을 ‘치료’하기 위해 살을 빼면 암 발생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수술을 받아서라도 체중을 감량해 비만에서 탈출하는 게 암 예방에는 이득이란 의미다.
미 클리블랜드클리닉 알리 아미니안 교수 등 연구진이 2004~2017년 미 건강보험 자료를 분석해 비만 대사 수술을 받고 체중이 감소하면 암 발병과 암으로 인한 사망이 줄어드는지 추적 관찰했더니, 수술 후 몸무게를 상당량 줄이고 나서 암 발병은 32%, 암으로 사망은 4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내용은 지난 3일(현지 시각) 미국당뇨병학회(ADA) 제82차 과학세션에서 처음 공개됐고 미국의사협회(JAMA) 네트워크에도 실렸다.
이번 연구는 암 환자를 봤더니 뚱뚱한 사람이 많더라는 관찰을 바탕으로 비만이 여러 암 발생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전제 아래 이뤄졌다. ‘비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수술까지 받아가며 살을 뺀 사람들이 그 이후 정말 암 발병률과 사망률이 낮아졌는지 알아본 것이다. 비만이 당뇨와 고혈압, 심근경색, 뇌졸중 등 심혈관계 질환이나 우울증·자살 등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많았지만 비만과 암의 상관관계를 추적 조사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연구진은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35 이상 초고도비만 성인 3만318명을 조사했다. BMI가 35를 넘으면 키 170㎝ 기준 몸무게 100㎏ 이상이다. 이 중 비만 대사 수술을 받은 5053명과 수술을 받지 않은 2만5265명을 나눠 추적했다. 수술을 받은 사람은 10년간 평균 27.5kg, 수술을 받지 않은 사람은 2.7kg 감량했다.
해당 조사 기간에 암은 비만 수술군에선 96명, 비(非)수술군에선 780명 발생했다. 1000인년(1000명당 1년 관찰했을 때 추산)당 수술군은 3건, 비수술군은 4.6건이었다. 암 누적 발생률은 10년간 수술군은 2.9%, 비수술군은 4.9%였다. 암 누적 사망률은 수술군 0.8%, 비수술군 1.4%로 암으로 사망할 위험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보이지 않는 암’으로 꼽히는 자궁내막암은 발생 위험이 53% 감소했다. 비만 대사 수술로 인한 암 위험 감소 효과는 나이와 성별, 인종과 무관했다.
정수민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수술을 받아서라도 체중을 감량한 이들과 계속 비만인 이들을 비교했을 때 살을 빼지 않으면 암 발생률과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다는 얘기”라며 “결국 암을 예방하고 암 사망률을 낮추려면 체중을 줄여서 비만이 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대한비만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도비만율(BMI 30 이상)은 2009년 3.5%에서 2018년 6.01%로 10년간 약 72% 증가했다. 2030년에는 국민 10명 중 1명이 고도비만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일반 비만율(BMI 25 이상)도 2009년 29.1%에서 2018년 32.5%로 10년간 약 12% 증가했다.
비만을 수술로 고친다는 인식은 아직 덜 알려져 있다. 가수 고(故) 신해철씨가 2014년 비만 대사 수술 중 하나인 ‘위밴드’ 수술을 받다가 숨진 일도 있다. 그러나 이혁준 서울대병원 위장관외과 교수는 “적극적인 체중 관리로 암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고도비만이면서 당뇨병(제2형), 관상동맥 질환, 수면 무호흡증 등 비만 후유증을 같이 앓고 있는 경우엔 수술을 통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음식 섭취량을 줄이고, 고단백 식사, 탄수화물 섭취 제한 등 영양 지도나 운동 권장 사안도 잘 따라야 한다.
☞비만대사수술
약물 등 내과적인 방법으로 치료할 수 없는 고도비만 환자나 비만으로 인한 여러 합병증을 치료하기 위해 위를 일부 잘라내거나 위에서 소장으로 우회로를 만드는 각종 수술법. 당뇨, 고혈압 등에도 치료 효과가 뛰어나 ‘비만대사수술’이라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