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출가한 뒤 아내와 둘이 살던 A(71)씨는 작년 2월 아내를 폭행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운영하던 식당을 정리하고 아내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다툼이 잦아졌다. 아내도 동네 복지 시설이 문을 닫아 나갈 곳이 없었다. 술에 의존하던 A씨는 다툼 끝에 아내를 폭행하기에 이르렀다. A씨는 이후 노인보호전문기관으로 인계돼 학대 상담을 받은 뒤 폭력 행위를 멈췄다.

코로나 사태 이후 노인 학대 건수가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엔 학대 행위자가 아들도 딸도 아닌 배우자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노노(老老) 학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배우자 학대가 가장 많아

15일 보건복지부 ‘2021년 노인 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2년 차였던 작년 한 해 동안 신고를 통해 노인 학대로 확인된 사례는 6774건이었다. 직전 연도인 2020년 6259건에서 1년 만에 8.2% 증가했다. 앞서 2020년에도 노인 학대 건수는 전년(5243건)과 비교해 19.4%나 뛰었다. 보고서는 “코로나 영향으로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동거 가족 간의 갈등이 늘면서 노인 학대 발생 가능성도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작년 학대 사례는 가정 내(5962건·88.0%)에서 발생한 경우가 가장 많았고, 이어 요양원 등 노인 생활 시설 536건(7.9%), 복지관 같은 노인 이용 시설 87건(1.3%) 등 순이었다.

특히 작년엔 배우자 학대 건수가 크게 늘면서 처음으로 아들 학대 건수를 앞질렀다. 줄곧 가장 많았던 아들의 학대는 2020년 2288건에서 2021년 2287건으로 비슷했던 반면, 배우자의 학대는 2120건에서 2455건으로 15.8% 늘어났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노인 부부 둘이서만 거주하는 가정이 늘면서 갈등을 중재해줄 다른 가족이 없고,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배우자 부양과 돌봄에 대한 부담도 커지면서 배우자 간 학대가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코로나 시기 노인복지관·경로당 등 시설 이용이 어려워지고, 자녀와 접촉이 단절된 영향도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작년엔 노인 부부 둘이서 사는 경우(34.4%)에 학대가 가장 많이 발생했다. 복지부는 “노인 부부 가구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배우자 학대에 대한 대응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일본도 노인 학대 급증

요양 시설이나 방문 요양 등 기관 노인 학대 건수도 2020년 874건에서 작년 2170건으로 대폭 늘었다. 배우자와 아들의 학대 다음으로 많다. 서울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오동주 팀장은 “코로나로 인해 외부 인력 접근이 제한되면서 요양 시설 내 종사자들 업무가 과중된 것이 학대 급증의 원인일 수 있다”며 “가족 면회 제한 등으로 입소 노인의 심리·정서적 안정이 무너진 것도 어려움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고 했다. 오 팀장은 “시설 입소 노인 인권 보호를 위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노인 학대 사례가 증가하는 현상은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일본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2020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발생한 일본 가정 내 고령자 학대 건수는 1만7281건이었다. 2019년보다 353건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해당 조사를 개시한 2006년 이후 최다 기록이다. 후생노동성은 “코로나의 여파로 돌봄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 노인들이 집에 있는 기간이 길어지자 가족의 부담과 스트레스가 높아져서 생긴 일”이라고 분석했다. 작년 1월 미 예일대 연구진도 2020년 4~5월에 60대 이상 노인 897명 중 21.3%(191명)가 학대를 당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코로나 이전(11.6%)에 비해 폭증한 수치”라며 “코로나 사태가 진행되는 중 노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공공 안전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