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9일 발표한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은 자영업자·은퇴자 등 지역가입자 부담 완화, 피부양자 범위 축소, 고소득 직장가입자 부담 강화로 요약된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직장가입자(1909만명)와 피부양자(1809만명), 지역가입자(859만가구·1423만명)로 나뉜다. 그런데 직장가입자와 달리 지역가입자는 소득에 대해 일정 보험료율을 곱하는 ‘정률제’ 대신 등급제(97등급)로 건보료를 매겨왔고, 부동산·자동차에도 건보료를 부과하면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돼왔다.
이에 정부는 이번 개편에서 현재 지역가입자 재산에 보험료를 부과할 때 재산 수준에 따라 차등 적용하던 공제 금액(500만~1350만원)을 5000만원으로 일괄 확대하기로 했다. 1600cc 이상 차량 등에 매기던 보험료는 앞으로 평가액 4000만원 이상 차량에만 부과한다. 그 결과 보험료 부과 대상 차량이 179만대에서 12만대로 줄어든다. 또 지역가입자 소득에 보험료를 매길 때 적용하던 등급제를 폐지하고, 직장가입자와 같이 소득 일정 비율(올해 기준 6.99%)을 보험료로 산정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지역가입자의 65%인 561만가구(992만명) 월평균 건보료가 15만원에서 11만4000원으로 3만6000원 줄어들 전망이다.
다만 지역가입자 최저 보험료는 기존 월 1만4650원에서 직장가입자(1만9500원) 수준으로 인상한다. 이로 인해 242만가구(290만명) 월평균 건보료가 4084원 인상되는데, 정부는 2년간 전액 경감 후 다시 2년간 50% 줄여주기로 했다. 또 소득에 대해 보험료를 산정할 때 국민연금 등 이른바 ‘공적 연금 소득’을 소득으로 평가하는 비율도 현행 30%에서 50%로 올린다. 이에 따라 연금 소득이 연간 4100만원(월 341만원) 이상인 8만3000명은 보험료가 오를 전망이다.
그간 직장가입자 ‘피부양자’로 건보료를 내지 않았던 27만3000명은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새로 건보료를 내게 됐다. 올해 기준 한국의 직장가입자 1명당 피부양자 수는 0.95명으로, 독일(0.29명), 일본(0.68명) 등보다 많다. 독일 피부양자 소득 요건은 약 720만원, 일본은 약 1280만원이다. 이에 피부양자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개편으로 피부양자 기준이 ‘연 소득 3400만원 이하’에서 ‘2000만원 이하’로 강화되면서 소득 2000만~3400만원인 27만여 명이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기일 복지부 2차관은 “부담 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정부는 4년간 건보료를 깎아주기로 했다. 첫해는 80%, 2년 차 60%, 3년 차 40%, 4년 차 20%를 깎아주는 식이다.
원래는 연 소득 1000만원이 넘는 피부양자 재산 요건도 기존 ‘재산과표 5억4000만원(시가 13억원·공시 9억원)’에서 3억6000만원으로 강화해 지역가입자 신규 전환 대상을 59만명까지 늘리려 했으나, 최근 4년간 부동산 공시가격이 55.5% 상승한 점 등을 고려해 일단 유보했다.
직장가입자 대부분(98%)은 건보료에 변동이 없지만, 월급 외에 임대·이자 배당·사업 소득이 연 2000만원(현행 3400만원)이 넘는 직장가입자는 2000만원 초과분에 대해 보험료를 내게 됐다. 이에 따라 직장가입자 45만명 월평균 건보료가 33만8000원에서 38만9000원으로 인상될 전망이다. 이번 부과 체계 개편으로 복지부는 보험료 수입이 연간 약 2조8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금 개혁 전문가인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결국 정부는 ‘소득 중심 부과’라는 전제 아래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셈인데 이를 수월하게 이루려면 지역가입자에 대한 재산·자동차 부과분 폐지를 앞당기고, 피부양자가 지역가입자로 전환할 때 느끼는 부담과 불안감도 줄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