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월부터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낮추는 내용 등이 담긴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2단계 개편’을 발표했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개편 효과는 미미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소득 중심 부과’ ‘가입자 형평성 강화’를 목표로 2018년 7월 1단계 개편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결과물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건보 가입자들의 불만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의 건보료 수입도 연간 2조원 넘게 줄어 가뜩이나 상황이 좋지 않은 건보 재정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9일 내놓은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 내용을 보면, 지역가입자의 65%인 561만가구의 건보료가 월평균 3만6000원 낮아진다. 소득 등급제 대신 소득의 일정 비율(올해 6.99%)을 보험료로 산정하는 ‘정률제’ 도입, 재산보험료 공제액 확대(500만~1350만원→5000만원) 등의 결과다. 이에 따라 저소득층의 건보료 부담이 일부 완화됐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가격 급등을 고려하면 ‘재산공제액 5000만원’으로는 은퇴 후 수입 없는 1주택 보유자 등의 건보료 부담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가입자 8만가구는 평가액 4000만원 이상 자동차에 대해서도 지금처럼 계속 보험료를 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산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 자동차에 부과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뿐이다.
연금 개혁 전문가인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부동산 가격 인상분 등을 고려하면 이번 개편은 4년 전 1단계 개편에서 사실상 나아간 것이 없다”며 “특히 자동차에 대한 건보료 부과는 서둘러 폐지하고, 재산에 대한 부과 제도도 획기적으로 개편해 ‘소득 중심 부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직장인의 가족으로 얹혀 건보료를 내지 않는 ‘피부양자’ 인정 기준 가운데 소득 기준만 ‘연소득 3400만원 이하’에서 ‘2000만원 이하’로 강화했다. 재산과표 5억4000만원(공시가 9억원, 시가 약 13억원)인 재산 기준은 그대로 뒀다. 연 소득 2000만원에 시가 12억원 주택 보유 시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는 것이다.
애초엔 이번 2단계 개편으로 전체 피부양자(1809만명) 중 59만명을 지역가입자로 전환할 계획이었지만, 결과적으로 27만3000명(1.5%)만 지역가입자로 편입돼 새로 건보료를 내게 됐다. 그러면서 정부는 “경제 상황을 고려해 처음 1년간 80%, 2년 차 60%, 3년 차 40%, 4년 차엔 20% 보험료를 경감해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새로 건보료를 내게 된 27만3000명의 반발을 의식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동섭 한림대 객원교수는 “보험료 15만원을 내야 할 사람에게 첫해 3만원만 받겠다는 ‘보험료 80% 경감’은 이례적이며, 정책 방향과는 맞지 않는 ‘눈치 보기식 임시 조치’”라고 했다. 지역가입자 건보료 부과 제도 개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피부양자와 직장가입자들이 지역가입자로의 편입을 꺼리고, 정부 입장에선 눈치를 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개편으로 연간 2조800억원의 건강보험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는 점도 문제다. 저출산 고령화, 코로나 여파 등으로 건보 재정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올해 1~4월 건강보험 재정은 1조7017억원 적자였다. 누적 적립금은 작년 말 20조2410억원에서 올 4월 말 18조539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번 건보료 부과 체계 2단계 개편 후에도 건보료를 한 푼도 안 내는 피부양자는 전체 가입자의 34.7%로, 여전히 3분의 1을 넘는다. 다만 복지부는 이번 개편과 관련, “건강보험 적립금과 현재 재정 여건을 감안하면 예측된 범위 내에서 충분히 시행 가능하다”고 했다.